예수께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동행하여 나사렛과 가까운 나인성 성문 앞에 왔을 때과부의 외아들을 메고 나오는 장례행렬을 만났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7:13-16)
예수님은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다시 살리신 이적을 행한 위대한 하나님이시기 전에 외아들이 죽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 위로해 주시는 따뜻한 인간이셨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신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일을 잊지말고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라는 것이다.(신24:17-22)
1)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일부를 남겨두라
3) 감람나무나 포도를 수확할 때에도 일부를 남겨두라
위에서 객(客히브리어로는 게르)은 나그네 체류자와 외국인 등 거주자가 일반적으로 소유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에서 게르는 일반적으로 개종자로 간주되었다. 선민의식이 투철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부르던 시절이니 지금 우리가 말하는 나그네나 귀화자들하고는 다른 개념이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는 구약에서 앨리야가 사랩다 과부의 아들올 살리는 이야기 (왕상 17장)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두 이야기가 모두 과부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을 말하고 있다.
구약을 통해 이런 사건을 잘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처럼 이적을 베푸신 예수를 “큰 선지자”로 받아드렸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이 이야기는 불쌍한 사람에 대한 예수의 지극한 동정이 강조되고 있다.
과부는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로서 남편의 죽음으로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잃어버린 여인들이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가 사망한 것처럼 자녀가 없을 때 그 여자의 형편은 더욱 심각하다.
나인은 나사렛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갈릴리 남쪽에 있는 성융이다. 엘리사가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곳이 수냄이고, 예수가 과부의 죽은 아들융 살린 곳이 나인으로 가까운 지역이다
[조금 더 깊이 알기]
1.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에서 복음서 기자들 중 누가복음 기자인 누가는 독특하게 예수에 대해 주(主) 즉 “퀴리오스”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2.신약에서도 고아나 과부를 보살피는 것은 교회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1)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딤전5:3)
2)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다.(약1:27)
◈강정훈 교수는 연세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그리고 성균관대학원(행정학박사)을 졸업하고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뉴욕총영사관 영사 및 조달청장(1997~1999)으로 봉직했다.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 및 성균관대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신성대학교 초빙교수(2003~2016)를 지냈다.
성서화 전시화(1993), 영천 강정훈-선교사 저서 및 한국학 기증문고 특별전(숭실대, 2012)을 개최했고,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원로장로이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 후 현재도 서울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운영하며 성서화를 쉽고 폭넓게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천년의 신비 성서화"(바로가기) "이천년의 침묵 성서화"(바로가기) 등이 있다. yanghwa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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