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 우리가 범하기 쉬운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 그런 약속은 아무데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지고 새 사람이 되어서 예수를 알지 못하던 과거와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즉 인생관이 달라지고 우주관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미래가 결코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쉽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장 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육신의 가시가 있어서 괴로움을 당했으며, 그가 당한 어려움은 살 소망까지 없어질 정도로 심각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성경에 이미 다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성경이 대답해 주지 않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는 믿음으로 길을 가면,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다음 단계를 알려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성령 충만히 받지 못하고 믿음이 없어서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도 옳은 말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간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요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자랑 할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원인모를 무서운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어 어려움을 당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는 어떤 이는 성경 공부를 많이 하면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교사가 바르게 가르친다 해도 진리를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 역경이 자동적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자면 지도와 같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저절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면 우리 자신이 거기까지 가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도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또한 이 지도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시가 무엇 입니까?
듣고 배운 바를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런 실천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떤 체험을 했는지 몰라도 내 경우는 좀 달라”라고 말씀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삶을 지키시는 분이요, 전능 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배고픈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빈들에 모였습니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마치 오늘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분명 예수께서는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을 것을 주어 먹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굶주린 5천의 사람들을 위하여 소떼를 잡아도 부족 하다고 할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돈이 먼저라고 생각 합니다.
자녀 교육 부부 관계 인생살이의 모든 문제를 비롯하여 행복도 돈으로 사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빌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굶주린 5천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천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비하여 너무 작은 음식이기 때문에 안드레도 사람에게 얼마 도움이 되겠는가고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이렇게 대답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못해도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렇게 대답 하지를 못 했습니다.
“주께서는 굶주린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 작은 음식이지만 주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주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만 보겠습니다. 주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못 하실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런 믿음의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는 안드레입니다. 빌립과는 너무 대조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5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2마리는 굶주린 군중을 먹이기에는 어림도 없는 보잘 것 없는 것 이었습니다.
하물며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굶주린 한 사람에게 먹이기에도 어림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수많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너무 작은 음식 이었기에, 안드레도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계산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들의 이해와 자신들의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곳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 하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이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 내 힘으로는 정말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분이신 주님께서 맡아 주십시오.“ 여러분이 처한 문제가 있습니까?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붙들고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나의 팔목 시계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 집에 있는 송곳이나, 드라이버 그리고 망치나 못 등을 가지고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전문 수리점에 가지고 가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하나님에게 기회를 드리지 아니 합니다. 우리가 너무 자신 만만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의 전문가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 처리 하려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지휘자인 마이클 코스타 경이 주도 하는 합창이 중간에 들어 있는 오케스트라의 곡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힘찬 트럼펫의 소리와 울리는 북 소리가 풍부하게 울려 퍼지는 멜로디의 바이 올린이 연주되며 연주가 반쯤 진행 되었을 때 피콜로를 부는 사람이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소용이 있지 연주를 하지 않아 도 되겠어. 아무도 내 연주를 듣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그는 악기를 입에 대기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지휘자는 중지, 중지 피콜로는 어디 갔어? 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피콜로의 소리가 없다는 것을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지휘자는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월등하게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우리가 약할 때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일하겠지 하면서 뒤로 물러나도 되겠어. 아무도 내 연주를 듣지 못할 테니까. 내가 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정당화 시킵니다. 그래서 주님이 수천 명의 사람을 먹이는데 사용하신 오병 이어의 진리를 망각 쉽습니다.
우리는 “피콜로는 어디 갔어?” 라고 찾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담당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그 문제를 해결해 주 시겠다며 빼앗지는 아니 하십니다.
이사야 30:18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없다고 판단 될 때, 더 오래 기다리며 고통당하지 말고 빨리 손을 떼세요.
그리고 온전한 믿음을 주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후 배부른 후의 일은 무엇입니까?
군중을 먹이신 후에 주님은 피 하셨다고 했습니다. 군중의 기미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곤고할 때 보다 형통 할 때 유혹에 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노아의 실수도 그렇고 다윗의 범죄도 그렇습니다. 그때가 바로 넘어지기 쉬운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주님께서 취하신 태도를 보십시다. 배부른 후에 주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셨던가? 남은 조각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거두어 라고 명 하셨습니다.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주님께서 왜 부스러기를 주우라고 하셨나? 배고플 때에는 보리떡 5섯 개에도 반색을 하던 마음이 배부른 후에 변심 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 하거늘 사람들은 개구리가 된 다음에는 올챙이 적 일을 생각지 않습니다.
여간한 성공을 했다고 해서 내가 왕관을 받아쓴다면, 배불리 먹고 흥분한 군중보다 나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후 주님은 다시 기도를 계속 하셨다고 합니다. 두 가지 뜻에서였을 것입니다.
첫째는 이미 받은 기적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앞으로의 더 큰 승리를 받기 위함 이었을 것입니다.
배고픈 군중을 앞에 놓고 보리떡 다섯 개를 들어 기도 하시던 그 간절함이 배부른 후라고 해서 식어 질 수는 없는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곤궁한 날에 하던 것처럼 형통한 날에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를 중단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향해 던지는 경고라고 믿습니다. 배고플 때 부르짖던 그때 그 시절이 언제 올 것인가? 본문의 주님을 생각 하면 주여! 배부를 때 곤궁 할 때 마음을 간직하게 하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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