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기가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노는 평범한 가정을 묘사한 작품이 있다. 스페인의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에스테반 무리요(무릴료)의 <작은 새와 강아지가 함께한 성 가족>은 많은 화가들이 그린 성가족(The Holy Family)의 전형적인 표현기법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구도와 색채를 보여 주고 있다.
중세 미술 이래 르네상스까지 성서화 속의 성모마리아의 의복은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과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loyalty)을 나타내는 푸른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평범한 시골 목수와 길쌈하는 여염집 부인의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브라운 계통의 색깔의 서민적인 작업복을 입고 있어 가난한 집안의 추위를 녹여 주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중세 메디발미술 이래 전통으로는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해 요셉은 그림에서 빠지거나 다소 늙은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이다. 그러나 성모상을 비롯한 종교화를 즐겨 그려 <에스파냐의 라파엘로>라고 불리기도 하였던 무리요의 성가족에서는 요셉을 젊게 그렸으며 아기 예수도 마리아는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으며 요셉의 무릎에 기대어 서 있는 특별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
마리아는 반짇고리를 앞에 놓고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물레를 돌리며 실을 뽑는 모습으로 그렸다. 이는 당시의 여인들의 일상적으로 집안에서 하는 일이며 마리아는 성경에서 말하는 슬기로움과 현숙한 아내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인 아기예수의 모습은 파격적이다. 아기예수의 머리에 후광(halo) 또는 원광(nimbus)이 없고, 천진난만한 아기 모습이다.
성서화에서 아기예수의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 그림은 희소한데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미술 시대의 종교화의 대가인 무리요는 이 그림에서 아기예수가 손에 작은 새를 잡고 있으며, 앞에는 작은 강아지가 아기예수와 눈길을 마주하고 있다.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며 아기예수를 쳐다보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성서화는 난해 해 보이나 가닥을 잡고 보면 경탄스러움과 깊은 은혜를 맛 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알기]
1. 성경에서는 길삼하는 현숙한 여인에 관한 기록이 있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배 실을 가져 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출 35:25-26 ) 현숙한 아내는 “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잠 31:19,21)
2.무리요의 <작은새와 강아지가 함께 한 성 가족>을 비롯한 르네상스 이후 성서화를 세밀히 관찰해 보면 신성하고 성스러운(Sacred) 분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은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까지도 겸비한 <사람의 아들>임을 반영하는 친밀하고 세속적인(Secular) 표현들이 함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강정훈 교수는 연세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그리고 성균관대학원(행정학박사)을 졸업하고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뉴욕총영사관 영사 및 조달청장(1997~1999)으로 봉직했다.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 및 성균관대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신성대학교 초빙교수(2003~2016)를 지냈다.
성서화 전시화(1993), 영천 강정훈-선교사 저서 및 한국학 기증문고 특별전(숭실대, 2012)을 개최했고,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원로장로이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 후 현재도 서울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운영하며 성서화를 쉽고 폭넓게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천년의 신비 성서화"(바로가기) "이천년의 침묵 성서화"(바로가기) 등이 있다. yanghwa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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