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성가족(Holy Family) 그림 중에서 아기 예수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집안에서 놀고 있는 가장 평안한 일상을 보여주는 메뉴스크립트이다.
여기는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인 갈릴리 지역 나사렛 동네의 아기 예수가 사는 집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이고 엄마는 바느질을 잘하기로 소문난 단란한 가정이다.
햇볕이 창을 통해 들어와 밝은 방에서 아기는 엄마 앞에서 바느질 놀이를 하고 있다. 아기의 맨발 앞에는 실을 둥글게 감아놓은 실톳이 보인다. 아기는 평소 엄마와 함께 실패에 실을 감고 풀고 하던 놀이를 했으나 오늘은 양팔에 실을 잡고 혼자서 놀고 있다. 심심해서 엄마를 바라보고 살짝 미소를 하며 “같이 놀이해요.” 하는 것 같다.
엄마 마리아는 붉은 색 긴 로브를 입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오른 손에 실이 달린 바늘을 들고 무릎 위에 놓인 흰색 천에 자수를 놓고 있다. 왼손 아래 탁자에는 가위와 작은 실패를 넣어 둔 반짇고리가 있고 그 옆에 노란 과일도 보인다.
아빠 요셉은 목수 의자에 앉아 대패질을 하고 있다. 덥수룩한 구레나룻 수염에 유대 남자들이 쓰는 빵떡모자 같은 자색 작업모를 쓰고 있다. 여기 평안한 방안 풍경 속에 화가가 특별히 설정한 검푸른 색의 어두운 벽이 있다.
요셉 뒤편 벽에 걸어 놓은 톱과 망치, 도끼와 밧줄 등 각종 연장들이 보인다. 이 연장들은 33세의 젊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어 달 때 쓰인 도구이기도 하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예감한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짐짓 일에만 열중한 듯 무심해 보이는 요셉의 표정과 긴 금발 머리칼을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슬픈 기색으로 생각에 잠긴 엄마 마리아를 보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인성을 가진 아기일 뿐이다. 나무장 위에 기르는 새를 좋아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
노란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큰 개미들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에는 왕궁에서도 그렇게 살았으니 아무도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양 쪽 창문 너머에는 청명한 날씨에 구름이 피어오르는 시골의 산야가 한적하다.
[좀 더 깊이 알기]
1 십자가 처형에 쓰인 각 종 도구를 아르마 크리스티(arma Christi)라 한다. 아르마 크리스티는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십자가 수난 도구들(Instrument of the Passion)인 십자가, 사다리, 기둥, 긴 창, 망치 그리고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 등을 가리킨다. 또한 사탄과 싸울 때의 무기(Weapons pf Christ)이기도 하다.
2. 성가족 [聖家族 Holy Family] 은 성모 마리아, 요셉, 예수로 이루어진 거룩한 가족을 말한다. 그리고 어린 세례요한과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함께 있는 모습도 광의로는 성가족이다. 그러나 가톨릭 회화에서 보이는 마리아의 친정 어머니인 안나는 성경에 기록이 없어 성가족이라 할 수 없다.
◈강정훈 교수는 연세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그리고 성균관대학원(행정학박사)을 졸업하고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뉴욕총영사관 영사 및 조달청장(1997~1999)으로 봉직했다.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 및 성균관대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신성대학교 초빙교수(2003~2016)를 지냈다.
성서화 전시화(1993), 영천 강정훈-선교사 저서 및 한국학 기증문고 특별전(숭실대, 2012)을 개최했고, 지난 2011년에는 35년여간 모은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을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원로장로이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한 후 현재도 서울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운영하며 성서화를 쉽고 폭넓게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천년의 신비 성서화" "이천년의 침묵 성서화" 등이 있다. yanghwajin@naver.com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