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하는 부활절은 단지 기독교의 명절만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를 새롭게 하는 자연과 역사의 새 날을 예표한다. 겨울에 움추렸던 만물이 봄에 새로운 소생으로 나아 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연과 역사에 있는 죄와 죽음의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용서와 생명으로 전환시킨다. 예수 부활은 자연과 역사의 종말론적 사건의 예표다. 성탄절은 성자 예수의 나심을 기념하게 하며, 부활절은 예수의 다시 사심의 능력을 통해 사망 권세 이기심을 기념하고 우리도 이를 믿음으로 부활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용서보다는 정죄 일변도의 적폐청산, 북한의 비핵화 협상 교착, 낙태 허용및 동성애 허용 등으로 시대적 정신은 화합을 잃어버리고 갈등 속에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혼미 속에서 한국교회는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면서 부활 생명과 진리와 화합의 등불을 높이 들어야 하겠다. 2019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다음같이 부활절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1. 기독교는 예수부활사건에 기초한다.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부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고전 15:12-15). 죄없이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예수가 장사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초대교회는 이를 체험한 제자들을 중심으로 모인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수부활사건에서 기독교는 시작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주신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뒤엔 심판이 있다. 생명의 부활과 사망의 부활이 있다.
예수 부활사건은 그의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일깨운 것이다. 불신앙의 현대인들은 부활에 큰 관심이 없거나 다빈치 코드 등의 음모론을 추종하며 부활이 없다는 허위 주장을 따른다(딤후 2:18).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지 못하셨을 것이며, 우리도 모두 거짓 증거자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9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순교나 유배 등으로 끔찍한 결말을 맞은 것만 보아도 이들이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산 증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믿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이러한 삶을 결코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자들이 삶으로 증거한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인 됨’(Being a Christian)에 있어서 핵심에 위치한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생 보험 가입 약관에서 동의를 요하는 하나의 조항이 아니라 실존으로서의 역사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을 성수한다(요 20: 19-26; 행 20:7; 고전 16:2). 신자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주일성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사리사욕에 유혹되지 말아야 한다(롬 6:5-12). 선한 양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벧전 3:21).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직분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거나 교회를 출석함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 등의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의 봉사가 ‘나의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잊지 말고, 만약 자신의 어떤 은사가 남보다 뛰어나다면 주님께 받은 것을 겸손하게 나누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 밖에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말고 불법이나 요령을 부리며 남을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법을 준수하며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근면성실함을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생 보험 가입 약관에서 동의를 요하는 하나의 조항이 아니라 실존으로서의 역사(Geschichte)이다. 사도바울은 증언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7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8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신앙을 자산(資産)으로 삼아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속적인 삶을 극복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도록 역사해야 하겠다.
3.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세상의 번영 추구 아닌 고난과 헌신이 요구되는 하나님 일을 행해야 한다
황금만능주의(mammonism)가 깊이 침투한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습, 권력다툼, 분열 등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생명이지, 세상의 소유가 아니다(고전7:23).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는 스스로 삼가야 한다(행 20:28).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십자가에 죽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다(갈 2:20-21).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거나 위선하지 말고 신실하게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벧전 4:11). ‘교회 안에서 교사가 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세속적인 청지기들처럼 자기도취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설교나 봉사 가운데에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교묘하게 뒤섞는 위선(僞善)해서도 안 된다.
한국교회는 부활주일에 지나치게 많은 행사로 인한 세상의 영광과 번영이라는 종교적인 축제를 추구하기보다 세상에서 남겨놓으신 주님의 고통과 짐을 대신져야한다. 한국교회는 주님의 일(God’s Business)을 위해 스스로 삼가고 자신을 희생해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부활 주일을 맞이하면서 황금만능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는 모습에서 죽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부활의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야 하겠다. 부활을 말로 설교하는 교회가 아니라 부활을 교회의 총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이제 부활이라는 말의 성찬을 탐닉하는 부끄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물욕과 권력욕에서 죽고 주님의 진리를 위해 부활하는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겠다.
4. 낙태합법화와 동성애 차별금지법에서 한국사회를 지키는 교회의 사회적 성결 능력은 부활 신앙에서 나온다
지난 2014년 4월 16일에는 부활주일 직전인 고난주간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의 침몰은 규칙 위반, 책임 방기, 자기 안일 추구 등의 우리 사회의 규칙 위반, 부패, 비리 총체가 빚어낸 것이다. 벌써 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를 생각만 하면 숙연해지며 가슴이 저려온다. 교회에서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축하하는 사이 304명이 물속에 생매장 되었고, 전국민은 그것을 지켜보았다. 유대인들이 홀러코스터를 보았듯이, 한국사회는 세월호를 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재난을 당하면서도 한국사회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후 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 처소는 얼마나 안전하게 되었는가? 5년 후 2019년 4월 우리 사회는 강원도에서 일어난 재난 수준의 산불을 비롯하여 사회적 불안전과 생명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성윤리와 생명윤리를 방기함으로써 나라가 윤리적으로 세월호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은 생명경시로 이어질 수 있으며,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윤리와 남녀 가정의 존재를 훼손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낙태합법화와 동성애 차별금지법 등을 통해 한국사회 전체가 인권으로 가장한 세월호에 갇혀 인간의 생명과 자연적 성별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부활신앙을 선포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물 밑으로 가라앉는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야 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길만이 한국사회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지 않을 유일한 길일 것이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국가의 사회질서를 세워갈 때 한국사회가 생명으로 충만한 사회가 거듭나게 될 것이다.
5. 사망권세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은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샬롬(평화)에 열쇠이다.
북한은 핵무기로 한반도에 파멸 위협의 긴장감을 불러오며 자신들이 조성한 이러한 위기감을 완화한다는 핑계로 일시적 평화를 협상하여 경제 원조를 얻어내고자 한다. 북한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로 북한 기독교 신자들을 정치 수용소에 수감하고 박해하고 있다. 하지만 부활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에게도 이웃이 되라고 하셨다(눅 10:25-37). 북한을 너무 벼랑 끝으로 몰거나, 비핵화 이행하지 않는 북한에 무조건적 원조를 해서도 안 된다. 전자는 전쟁의 위기감과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며 후자는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도와주게 된다. 그런데 두 방법 모두 국내 정치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세계 모든 다른 나라가 북한에 대해 가하는 국제적 경제제재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한 인도적 물자 나눔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북한 동포에 한국 신자들의 사랑을 보이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해야 한다. 분단을 넘어 하나 되는 길은 부활 복음 안에서 용서하며 사랑하는 길이다. 한국교회는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서독의 교회들이 독일통일을 위해 보여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조용한 기독교 혁명’은 좋은 본보기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만이 제 2의 평양 대부흥을 불러일으켜 통일 한반도의 교회와 사회에 진정한 샬롬(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6. 부활 신앙은 강원도 산불 재난 등 환경 오염의 지구촌에서 호모심비우스(공존하는 인간)을 가르친다.
한국교회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이번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난 재난 수준의 산불로 인한 자연의 폐허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재난민을 도우고 폐허된 자연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피조물은 크게 인간과 자연으로 나뉜다. 오늘날 타민족에 대한 인종차별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와 환경오염 문제가 크게 대두된다. 모든 인종은 서로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웃이기에 서로 차별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레 19:18). 부활 신앙의 그리스도인에게 겉모습의 인종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마 22:30). 마찬가지로, 자연도 인간을 위한 공존의 대상이지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인 자연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지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창 1:26-28). 그리스도께서 오병이어 기적 후에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던 것처럼(요 6:12), 그리스도인은 경건과 검소함으로 자연을 청결하게 잘 다스려서 환경오염을 해결하고 방지해야 하겠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담당하셨다(Jesus paid it all !). 이 메시지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자 개인과 교회, 한국사회와 한반도, 더 나아가 지구촌에까지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귀한 메시지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부활신앙의 능력으로 신자 개인이 부활의 증인이 되고 교회가 사회를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며, 우리 사회에 화해가 실현되며 북한사회에 자유와 인권이 실현되고, 한반도에 평화통일의 전기가 이루어지며 지구촌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도록 자기 비움과 헌신의 실천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19년 4월 2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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