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내가 사는 길 주위에 가지치기를 하였다. 그 후 나무는 숨이 죽은 듯 보기에도 흉물 같은 모습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었는데 금년 여름에는 풍성한 잎으로 장식하여 바람 한 점 없는 혹서의 더위에도 나무 그늘을 찾으면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무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억제시켜 분재를 만들어서 기형물을 들여다보며 쾌재를 부르는 분재군 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지하나 잘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이들과 나는 생각을 좀 달리한다. 하긴 나무도 잔가지가 빽빽하면 제 스스로 가지치기를 해서 솎아낸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지난주에 한국 크리스천 문학가 협회 회원들에게 기이한 문자가 날아 왔다. 서울 성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화계사 주지 백운 소림 이라는 분이 쓴 “오호라 예수는 성경의 70%를 불경에서 가져다가 완성 했다”는 제목의 책이 회원들에게 무작위로 발송된 것이다. 소문을 종합해 보면 1차에 먼저 송부 되었고 이번에 2차로 보낸 것이란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일고의 가치도 없어 보여 이미 불에 태웠다는 분도 있고 반송 하겠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말 예수님이 12살 이후로 인도에 가셨는가와 예수님의 말씀 중에 70%가 불경에서 인용한 것이라면 성경의 70%는 이웃 종교 교주의 언어 록을 표절한 것이 되는데 문제는 심각해진다.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종교 에도 윤리 도덕 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그러한 주장을 해도 할 말이 궁색해 진다. 석가뿐만 아니고 공자나, 맹자, 소크라테스 이슬람의 경전에도 그와 비슷한 윤리 도덕의 관한 말씀이 수다히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책을 살피고 그 심각성을 고려하여 곧바로 회원 카톡 방에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실망스런 반응 이었다.
한 개인의 주지승의 글에 그렇게 가볍게 반응하기 보다는 좀 더 조직적이며 논리적으로 반응하자는 주장에 본인도 긍정하고 논란을 중지한바 있으나 이러한 면에 한국 교회가 명쾌하게 대안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공 해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교회는 그 동안 승승장구한 부흥의 역사를 이어 왔다 그러나 제 멋 대로 커버린 무성한 나무마냥 제때 가지치기를 외면한 채 뻗어나간 면이 없지 아니한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제 어느 면에 절단기를 대야하고 어느 부위를 잘라 주어야 하는가를 세심히 살펴서 전체적인 구조를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의미를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천지문제, 권능 신, 여호와의 증인 등의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터에 이웃 종교의 기독교 폄훼도 도를 넘고 있다. 자기 멋대로 커버린 면을 나무를 잘라내는 일은 뼈아픈 고통일 지라도 전지만 잘하고 새롭게 거듭나면 새로운 기회는 오리라고 확신한다. 분명 새순이 돋고 큰 그늘을 이루면 혹서의 더위에 그늘을 찾는 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기독교를 폄훼를 해도 진리의 그늘은 사라지 지 않으리라. 확신 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의 1세기 초반은 법화경이 아직 편찬되지도 않은 시기이다. 법화경이 최종적으로 성립된 2세기 후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보다 100년 이 지난 뒤이고 복음서 편집도 이미 끝난 다음이다. 다시 말해서 법화경은 예수님시대보다는 물론 이고 복음서보다도 한참 뒤에 나온 책인데 어찌 예수님의 말씀을 석가의 어록에서 인용 했다는 말인가? 진리 무장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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