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여전히 불안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새로운 존재’가 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
스승 김경재 목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집필배경]
“나의 60년 신학 여정을 뒤돌아보면서, 신학 순례기의 종합 보고서 같은 결실로서 이 책 『틸리히 신학 되새김』을 세상에 낸다. 그런데 ‘연구(study)’나 ‘성찰(reflection)’이 아닌 ‘되새김(rumination)’이라는 책명을 붙였다. 소나 염소, 낙타 등이 먹이를 먹은 후 천천히 되새김질하듯이,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계의 거장 중 한 사람인 폴 틸리히의 신학을 주체적으로 되새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되새김하면서 나는 동아시아 그리스도인으로서 틸리히와 대화하고, 한국인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그의 신학이 말하는 의미를 생각나는 대로 허심탄회하게 ‘되새김 노트’에 적어보았다. 그것이 이 책의 내용인 셈이다. 틸리히의 대표 저서인 『조직신학』을 텍스트로 삼아 틸리히 신학론 중 50개 핵심 소주제를 간추려 뽑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폴 틸리히인가? 돌연변이처럼 신학의 길에 들어선 나에게, 자기의 신학 하는 자리로서 틸리히가 말하는 ‘경계선상에 서서 신학 하기’가 친근감과 편안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변증신학이다.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매 시대 새 시대의 인간의 질문과 관련시키면서 복음 진리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임무를 신학의 책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이 들자 한국인으로서 나는 동아시아의 정신적 문화 토양이라는 거대한 전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 비할 때 ‘성서 안에서 들려오는 새롭고 낯선 복음’은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충돌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서로를 재조명하며 ‘영과 진리 안에서’ 창조적 변화를 모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세기 신학 분야의 거성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섭취했지만, 내 앞에는 언제나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폴 틸리히가 버티고 서 있음을 깨달았다.”_저자의 <책을 내면서> 중에서
[기본정보]
1. 정통신학, 종교사상, 인문학, 다종교, 불교, 비신학자를 아우르는 저자의 광범위한 학문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책으로 저자는 3년 간 이 책의 집필에 몰두했다.
2. 이 책은 폴 틸리히의 가장 유명한 개념인 ‘궁극적 관심’으로 1장을 시작해, 마지막 50장은 ‘영원한 생명’을 화두로 하고 있다. 폴 틸리히의 저서『조직신학』의 원전 텍스트 50개를 선별해 챕터의 앞에서 제시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되새김(rumination)’ 이 따르는 형식이다.
이 책에서 발췌 인용하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은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3 volumes in One, Vol. 1,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이다. 책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용은 다섯 개의 부로 구성되었다. 제1권에서는 이성과 계시, 그리고 존재와 하나님을 서로 상관시켜 다루었다. 제2권에서는 인간 실존과 그리스도를 상관시켜 다루었고, 제3권에서는 생명과 성령,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관시켜 다루고 있다.
3. 폴 틸리히의 상세 연보와 주요 저서 목록은 책 뒤에 붙였고 챕터별 키워드는 별지에 정리했다. 4. 이 저서 출간을 계기로 ‘2018 김경재와 함께하는 상징신학 거장 폴 틸리히 읽기’라는 주제로 주 1회 총4회의 강연이 기획중이다.
[주요내용]
1) 제1부 신앙과 이성, 그리고 거룩 체험
제1부는 틸리히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궁극적 관심’에서 시작한다. 필자는 되새김에서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는 대상을 궁극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지만, 틸리히에 의하면 그 결과는 우상 숭배요 인간성 파괴요 실존의 사람다움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틸리히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라고 했고, 이 통찰은 세속화된 한국 종교에 경종을 울리며 자기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틸리히는 이 ‘궁극적 관심’의 자격에 부응하는 특징으로 궁극적, 무제약적, 총체적, 무한적 속성의 네 가지 필요 충분 조건을 제시했는데, 필자는 되새김에서 예수의 ‘궁극적 관심’이 생명, 정의, 자유, 사랑으로 압축되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것의 실현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자기희생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강조하고, 예수의 ‘궁극적 관심’에 의해 비판받고 완전히 새롭게 변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필자는 틸리히의 사상 체계는 마치 중세 고딕식 성당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처럼, 장엄하고 정교하며 조직적이라고 주장한다. 세 권으로 구성된 『조직신학』은 모든 신학적 주제를 인간의 실존적 물음과 연관시키면서 기독교 진리를 조직적으로 변증하고 설파하는데, 방법론을 다루는 ‘서론’을 제외하면 전체 내용이 다섯 가지 범주로 나뉘어 그의 ‘상관 방법’에 따라 전개된다. ‘상관 방법’이란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서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이 상호 의존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인데, 낡은 신학 방법을 대체할 방법론으로 틸리히 변증적 신학의 핵심이다.
2) 제2부 존재자들과 존재 자체: 피조물 의식 창조주 신앙
같은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동료였던 라인홀드 니버는 틸리히의 신학 체계가 지나치게 ‘존재론적 신학’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틸리히는 니버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지만 성숙한 신앙이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장성한 사람의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필자는 2부에서 틸히리가 21세기 사람들의 영성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점에 주목한다. 이는 라이몽 파니카의 ‘우주-신-인간 의식의 영성’이라는 신학적 화두와 같은 맥락이다. 이는 초월적 유신론과 내재적 범신론을 동시에 극복하려는 범재신론적 신앙의 입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성적 남성 신으로만 강조하기보다 모성적 속성의 하나님을 고백하려는 의도가, 명령하기보다는 설득하는 하나님이며, 군주적 신이 아닌 동반자 하나님이고, 무감동의 초연자(超然者)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는 긍휼의 하나님이며, 전능을 과시하는 작업가설적 신(deus ex machina)이 아니라 기다리고 치유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려는 신관이라고 설명한다.
틸리히가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형이상학적이어서 신학적 표현으로는 성공적인 것 같지 않지만 틸리히가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부르고 싶은 진정한 이유는 인간이 만든 종교적 우상 신들을 폭로하고, 허무주의가 삶을 밑동에서부터 허물어뜨리려는 시대 사조를 극복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려고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동아시아 문명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와 다른 세계적 종교들(불교, 유교, 도교)의 가장 큰 특징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주 신앙’을 고백한다는 점을 꼽았다. 틸리히는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도 창조론은 과거 한 때 일어났던 창조 사건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조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우주 세계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며, 인간의 유한성의 의미를 그 피조성에서 찾고 긍정하려는 신앙고백적 담론이라고 말한다. 즉 창조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인간이 지닌 자유와 운명, 창조성과 파괴성, 선함과 악함, 희망과 절망, 기획과 전진 등 생명의 양극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신앙적 담론이라고 되새김한다.
3) 제3부 새로운 존재: 인간 실존의 문제와 그리스도인이신 예수
필자에 의하면 틸리히는 자기 실존의 비참 상태에 빠져 절망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영적 의사로서 신학적 인간학과 그리스도론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실존 분석, 심층심리학, 타락 설화의 관점으로 현대인이 ‘왜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하는가에 대해 해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존주의 사상의 공통점으로 거론되는 명제, 곧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는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였으며, 현재는 인간 본질적 상태에서 소외된, 타락한 상태라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과 근본적으로 갈라진다고 해석한다. 기독교는 인간의 본래성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하고, 단순한 무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의지와 행위에 의해 존재를 선물로 받은 피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본질과 실존의 차이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즉 본질은 창조와 인간성의 본래 모습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라고 기뻐하신 진선미가 충만한 생명 상태이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적 반란과 탐욕과 교만에 의해 생명 동산에 반란이 일어났고, 죄와 죽음의 권세가 생명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필자는 기독교 신학이 복음의 변증을 위해 실존주의를 과감하게 사용하지만, 실존주의 넘어서 믿음에 의한 ‘존재에로의 용기’를 갖는다. 필자는 기독교와 실존주의가 인간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다는 견해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편다. 이에 대해서는 비존재의 힘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의 피조물 긍정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도 바울의 실존적 탄식과 절망인 <로마서> 8장을 인용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8장 38~39절
또 3부 20장에서는 인간의 실존적 소외 상태의 특징으로 겪는 체험 중에 동서 종교사에서 공통으로 다루는 중요한 주제인 ‘고난’과 ‘고독’의 문제를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의 관점에서 비교하여 되새김하고 있다.
4) 제4부 성명과 성령: 생명의 불안정성과 성령의 현존
필자는 틸리히가 ‘생명과 성령’을 다루는 관점에 틸리히와 생몰 연대가 비슷한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을 언급한다. 이 두 사람은 19세기 말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벌어졌던 베르딩 전투 때 각각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군목으로 전쟁에 참가해 청년 장교 시절을 보냈고 그 후 테이야르는 가톨릭 예수회 신부로서 고생물학 분야의 과학자로, 틸리히는 철학적 신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화두는 생애 후반부 이 두 사람의 화두였다.
필자는 틸리히가 테이야르 샤르댕의 명저 『인간 현상』을 읽고 미래에 대한 다소 낙관적인 전망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대자연 안에서 생명의 진화론적 과정들에 대한 샤르댕의 진술을 지지한다. 틸리히는 신학은 자연과학 이론 안에 안주하는 않는다는 입장이면서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은 인정한다. 샤르댕과 틸리히 두 사람 다 생명의 다양한 현상을 ‘생명의 차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으며, 생명은 창조적 진화 과정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견해를 같이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인간을 다차원적인 인간 존재, 소우주라는 인식은 단순히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창발(emergence)’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언급한다. 창발이란 밖으로 새로운 현상이 발생, 출현, 생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연과학의 인식론적 원리는 그러한 형이상학적 요소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자연과학자이면서 위대한 과정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창조성’이라는 요소를 창조적 과정에 개입시킨다. 필자는 기독교 인간학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특이성을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춘 독특한 능력이나 내용에서 찾지 않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이성 능력, 언어 능력, 윤리적 가치판단 능력, 심미적 예술 능력, 도구 제작 능력뿐만 아니라 거룩 체험의 종교 능력에서도 찾지 않는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규정함을 강조한다.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며, 피조 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햇빛처럼 비치는 생명 세계가 되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의지에 참여하는 데서 찾는다. 필자는 영성은 재능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뜻’을 묻고 추구하는 사람됨의 유일한 품성이라고 본다.
5) 제5부 역사와 하나님 나라, 그리고 영원한 생명
제5부에서 필자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적 실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역사의 해석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역사적 실재가 내포하고 있는 인간 실존적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수운 최재우를 인용하고 신천 함석헌의 시집 『수평선 너머』에 실린 시 <미완성>을 인용하여 인간이란 대자연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주와 역사, 공간과 시간, 생태 자연과 인간 사회는 독립되어 있는 두 개의 실체라기보다는 ‘실재의 양면성’이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은 참된 종교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또 5부에서는 다른 동서양 종교의 일반적 특징에 대해 틸리히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도 소개한다. 틸리히는 세계 종교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눴는데 하나는 비역사적 종교 유형이고, 하나는 역사적 종교 유형이다. 비역사적 종교의 대표적 사례로는 힌두교와 불교로, 역사적 종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든다. 이들 역사적 종교의 장점은 역사에의 관심, 역사 변혁의 의지와 뜻을 역사 속에서 이어가고 찾으려고 하는 미래지향적 성격, 개인의 구원 못지않게 사회 공동체 전체가 구원받는 이상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종교적 특성을 든다. 이 부분에 대해 필자는 비역사적 종교로 분류한 불교에 대해서 치밀한 되새김 작업을 시도한다. 필자는 불교를 현실도피적인 종교로 본다든지, 인연생기설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개체 인간과 개체 사물의 독자적 존재성이 경시되거나, 덧없는 안개 같은 것으로 간주하다거나, 심지어 공동체 의식 없이 개인의 해탈만 추구하는 종교로 보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틸리히의 지적대로 ‘역사를 통한, 역사의 구원’이라는 비전은 약하다는 지적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이 점에 있어 필자는 틸리히가 어쩔 수 없이 서양 기독교 신학자임을 인정한다. 이 장에서는 또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 문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틸리히의 입장과 한국에서 일어난 기독교와 이웃 종교들의 만남, 종교 간의 대화의 역사도 소개한다.
[추천의글]
이정구(성공회대 총장): 재빨리 먹은 후 시간이 날 때 반추하는 것이 되새김이다. 그동안 한국의 신학도들은 폴 틸리히라는 대 신학자의 사상을 배우고 공부했지만 다른 신학자들의 사상과 함께 단시간에 재빨리 흡수하는 바람에 틸리히 사상의 어느 한 부분도 제대로 체화시키지 못했다. 그렇다고 시간이 날 때 틸리히를 새삼 반추한 학자도 없었다. 김경재 교수님은 노학자로서 오랜 세월 동안 틸리히 사상 전반에 관해 유불선을 넘나들면서 곱씹고 반추하신 그 산물을 우리 앞에 펼쳐놓으셨다. 어쩌면 교수님의 마지막 역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첫 표지를 대하는 순간부터 가슴을 여미게 한다. 내용 대부분을 한국의 문화신학적인 시각으로 되새김해주셨다. 추천자의 전공 탓이지만 틸리히의 미술과 건축 부분을 건너간 듯이 보이나 이조차도 책 내용 기저에 통합적으로 모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건강하셔서 교수님의 역작을 한 번 더 기대해본다. 그동안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던 틸리히 사상이었는데, 이 책은 틸리히 사상에 대해 한국 전통 사상과 문화적 감성으로 재차 되새김을 해주는 한국 신학사상사에서 새롭게 융기한 큰 산임에 틀림없다.
채수일(경동교회 담임목사): 한 신학자가 평생 동안 해온 신학 연구를 한 신학자와의 대화로 끝맺는다면 그 신학자가 끼친 영향, 아니 서로 주고받은 대화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김경재 교수님에게 있어 폴 틸리히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김경재 교수님은 40년 신학 연구를, 폴 틸리히 신학을 되새김하는 역저로 집대성했습니다. 그동안 김경재 교수님의 신학적 순례는 다양했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폴 틸리히가 있었다는 점에서 틸리히 신학의 새김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신학의 과제를 ‘매개(mediation)’로 보고, 신학적 방법론으로 ‘상관(correlation)’ 방법을 유지해온 틸리히 신학은 김경재 교수님의 신학적 관심과 방법론의 기저를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생을 추구하신 ‘대화하는 신학’, 즉 신앙과 학문, 신비와 인식, 신학과 교회를 매개해오신 노력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틸리히 신학을 되새김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신학자의 시각에서, 그리고 동아시아 종교 전통의 빛에서 틸리히 신학의 주요 담론을 꼼꼼히 되짚어본 것입니다. 자기 삶의 자리가 한국, 아니 동아시아인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새로운 신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도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정배(전 감신대 교수,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 틸리히 신학에 대한 단순한 되새김이 아니다. 틸리히의 상관 방법론에 기초하여 틸리히의 물음에 저자가 창조적으로 답한 것이다. 동시대 신학자인 바르트 교의학과 달리 틸리히가 교회 공동체를 넘어 이성이 지배하는 세속의 질문을 답하려 했다면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틸리히를 벗했으나 한국인으로서 저자의 물음 자체가 그를 능가한 탓이다. 자신 속에서 아시아인, 한국인 됨을 재발견한 결과이겠다. 서구적 이성이 아닌 동북아의 종교문화적 상황에서 틸리히 신학을 재구성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가 택한 50개의 틸리히 명제들에 대한 풀이는 분명 되새김이 아니라 새 창조였다. 이 책을 통해 후학들은 한국인의 종교적 실존 속에서 서구 신학이 어찌 독해되는지를 가슴 뛰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김주한(한신대 신학대학원장): 김경재 교수는 두텁게 직조된 종교의 외피를 벗겨내어 ‘궁극(窮極)의 본질’을 설파한 틸리히의 『조직신학』을 ‘되새김’이라는 해석의 기술을 사용하여 탁월하게 해부해낸다. 저자는 틸리히 신학 세계의 주제어들을 현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여 기독교신학의 결정체를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독법은 이 책이 주는 최고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틸리히 신학에 내포된 긴장의 역설들이 현대 세계관에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지 ‘동아시아의 정신적 문화 토양’ 위에서 조명한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학의 전통적인 범주와 현대 문화가 틸리히 신학을 통해 어떻게 통전되고 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21세기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 책은 기독교 신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싶은 독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고도 남을 만큼 손색이 없다.
정경일(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숨밭 김경재 목사님을 생각하면 두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고요한 수도원에서 침묵 명상을 이끄시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번잡한 거리에서 정의를 외치시던 모습입니다. ‘수도원’과 ‘거리’가 서로 무관한 두 장소가 아니라는 진실을 목사님은 몸소 가르쳐주셨습니다. 김경재 목사님이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을 치열하게 ‘되새김’하신 까닭도, 분리되어서는 안 될 삶의 차원들—신앙과 이성, 메시지와 상황, 초월과 내재, 하나님 나라와 역사—의 연기적 상관성을 자각하고 체험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목사님의 ‘침묵’과 ‘외침’이 둘이 아닌 것은 그 두 행위 모두 틸리히가 역설한 ‘궁극적 관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틸리히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던 현대인에게 ‘존재의 용기’를 선물해준 20세기의 스승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어제의 틸리히 사상에 대한 후대의 주석서가 아니라 오늘 ‘서양의 지혜자 틸리히’와 ‘동양의 지혜자 김경재’가 나누는 당대적, 주체적 대화서입니다. 두 스승의 대화를 귀 기울여 되새김할 때, 21세기에도 여전히 불안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흔들림조차 ‘존재의 근거’ 위에 있음을 신뢰하며 ‘새로운 존재’가 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스승 김경재 목사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김희헌(향린교회 담임목사): 한번은 중간고사 시험문제로 『반야심경』을 외워서 쓰게 하신 선생님. 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독교와 불교의 낯선 경계를 오가며 끙끙댔다. 그것이 사상의 편협과 나태를 깨뜨리기 위해 내리친 스승의 죽비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궁극적 관심’에 이끌린 종교가 사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유와 용기 없이 제 발로 설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틸리히의 웅대한 신학을 흡수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이 더 이상 서구의 지성을 이끌 수 없는 한계 지점에서 활동했던 틸리히는 낡은 유신론의 신(神)을 죽여서라도 철학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영감 있는 신학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위기의 시대에 ‘지성인의 사도’로 불린 그의 사상이 여기 60년 ‘신학 순례기의 종합 보고서’를 통해 재탄생했다. 이럴 수가! 선생님은 멈추지 않고 틸리히를 되새기고 계셨다. 공동의 몰락이 일종의 문화가 되어버린 고달픈 한국 교회에서 여전히 지성의 모험을 통해 솟아날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을까? 이 책에 펼쳐진 50개의 주제 해설은 그들을 도약의 발판으로 인도할 것이다. 인도받을 곳은 틸리히의 옛 서재가 아니라, 21세기 예수 운동에 담겨야 할 궁극적 관심이 환히 빛나는 사상의 광장이다.
차옥숭(전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연구교수): 김경재 교수님은 이 책에서 폴 틸리히 신학의 주요 내용을 잘 정리하여 조목조목 조명해주십니다. 틸리히의 신학적 주제들을 곱게 되새겨서 후학들을 위해 쉽고 상세하고 친절하게 풀어주십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틸리히의 신학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김경재 교수님의 60 평생 축적된 신학적 사고의 깊이와 다채로움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야말로 역작입니다. 저는 이 역작을 감동과 설렘으로 읽으면서, 노학자의 원숙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이 책에서 동양의 신학자, 한국의 신학자라는 사유의 자리에 서서 동양 종교의 전통적 사상들과 동서양 근현대 사상가들의 사유를 넘나들지만, 그러나 현실 교회와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깊고 풍부한 학문적 토론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깨어서 미래의 비전을 생각하고, 창조적 전진을 할 수 있도록 사고의 지평을 확장해줍니다. 한국 기독교 신학에서는 추상적 교리와 목회적 실용만 남고 ‘사상’이 사라져 간다는 한탄이 들립니다. 이 책은 이런 시대에 신학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교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 항목, 틸리히의 가장 유명한 개념인 ‘궁극적 관심’을 시작으로 마지막 50번째 항목 ‘영원한 생명’을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신학적, 사상적 희열을 가슴 벅차게 느낍니다. 이 희열을 느끼게 해주신 김경재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자소개]
저자 김경재는 한신대를 졸업한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미국 듀북 대학 신학원과 클레아몬트 대학원 종교학과를 거쳐,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에서 문화신학·종교 신학 교수로 일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 한신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폴 틸리히 신학 연구』, 『해석학과 종교신학』, 『이름 없는 하느님』, 『김재준 평전』,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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