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관을 독립시키고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권력을 나누는 규정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자로 대통령 개헌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고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약속한 개헌시점인 '6·13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대선 후보들이 모두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자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원칙이라고 본다. 각 정당들이 개헌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개헌 논의의 장을 만들자고 한 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런데 개헌안이 사전에 충분한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제출되어 야당과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샬롬나비는 다음같이 견해를 피력한다.
1. 이번 대통령 개헌안은 공청회, 국무회의 심의 외면한 독단적 졸속 형식적 개헌안이다.
헌법 제89조는 개헌안이 국무회의의 심의(審議)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는 사실상 없었다. 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개헌안은 상정된 지 40분 만에 통과됐다. 헌법 기구인 국무회의는 청와대가 만든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거수기로 변해 버렸다. 이날 회의 이전에 개헌안과 관련된 국무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총 11개 장 137조에 이르는 개헌안에 대한 법제처 심사도 3월 22일부터 단 3일간 주로 주말에 이뤄졌다. 모든 게 졸속이고 형식적이다. 앞으로 이 개헌안이 만에 하나 통과돼도 헌재에 소원하면 100% 위헌 판결이 난다는 법률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다.
2.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한 이번 개헌안은 여야국회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1987년 헌법 개정 때는 각 정당의 개헌안, 헌법학자 중심의 개헌안, 대한변협의 개헌안이 나왔고 쟁점 조항별로 학자 및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쳤다. 이번 개헌안에서 문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강행한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한 절차이다. 국회의석 3분의 1을 넘는 야당이 대통령 개헌에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이 개헌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개헌안 제출을 강행한 것은 개헌을 쟁점화하는 것이 지방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개헌을 하려면 개헌안을 공개하고 발의 전에 국회와 협상을 했어야 했다. 야당이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면서 합의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늦게나마 여야 간에 개헌안 심의에 착수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여야는 국가백년대계를 세우는 마음으로 권력구조 개편 개헌안에 합의하라.
3. 헌법 전문 개정은 졸속하다. 신중해야 한다.
개헌안에 6·10 항쟁,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을 명시했는데 이는 졸속이다. 전문에 역사적인 날을 헌법에 넣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뭐는 넣고 뭐는 뺄 것이냐는 논란이 나올 것이다. 헌법전문에 3·1운동과 4·19혁명을 넣은 것은 어느 정도 국민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6·10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넣으면 광주학생운동이나 마산봉기 등은 왜 빼느냐는 시비가 나올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후대에 맡기는 것이 지혜롭다.
4. "지방 분권"이란 매우 애매하며 연방제로 가는 의혹이 있다.
자치와 분권을 강화한 내용이 신설됐는데, 이게 개헌안의 핵심이다. 바로 제1조 3항에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는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다른 조항에서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놓았다. 연방주의처럼 '두 개의 주권(dual sovereignty)'을 규정해놓았다. 지방의 권한 확대를 위한 취지였다면 '지방분권국가'라는 용어까지 도입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개정되면 중앙과 지방 간에 입법권과 사무 배정 문제를 놓고 혼란이 가중하게 될 것이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지방정부는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안의 사전 단계'라는 의혹을 부를 수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남북한 연방제'를 승인할 정당성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북한과의 연방제를 염두에 두고 했다면 나이브하거나 위험한 시도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통일전선전술'에 불과하다.
5. 사회 보장 제도 대폭 확충은 포퓰리즘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부각돼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 것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개헌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기본권 조항'을 대폭 늘린 것이다. 현행 헌법에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권리"(34조1항) "국가는 사회 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34조2항)" 는 조항만 있었는데, 이를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임신·출산 양육과 관련하여 국가 지원을 받을 권리,"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게 살 권리" 등으로 조목조목 나열해 놓았다. 국가의 의무에서 국민의 권리로 변경 나열한다면 "건강하게 살 권리"를 주장하면 병원치료비를 국가가 다 부담하는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속이는 짓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6. 토지공개념 헌법 명문화는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제한 정당화 우려가 있다.
경제민주화 조항 강화와 함께 토지공개념 명시와 같은 부분들이 지나친 '국가 개입' 더 나가서는 사회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 토지초과이득세는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헌재가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를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토지공개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제도들이 사유재산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라고 본 것이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한다는 것은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제한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 자유시장경제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7. 동성애 차별금지법의 헌법적 근거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
개정안 제11조 2항의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 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에서 "성별 또는 장애" 다음에 "등"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여 사법주의 해석을 통해 성적 지행(동성애),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 논란(사회적 폐해를 주는 동성애)이 되는 사유들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되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헌법적 근거가 될 우려가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원해온 국가인권위 헌법 개정안 문구와 동일하다.
8. 헌법기관인 감사원장, 대법원장 등 헌법기관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은 제한되지 않았다.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했으나 대통령의 인사권은 축소되지 않았다. 대법원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도 제한되지 않았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장은 헌법상 국가기관의 인사권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삼권분립에 어긋나고 국민주권주의에도 위배된다. 대통령 권력과 연결된 대법원장이 사법부 전체 인사는 물론 대법관 제청권을 갖고 있다. 법률적 양심에 따라 간섭을 안 받고 판단해야 하는 법관이 그쪽 눈치를 보면서 관료화된다. 이뿐 아니라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 감사위원, 국가인권위원, 방송위원 선출에도 관여해왔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대법원장을 통해 행사되는 구조를 전혀 제한하지 않았다.
9.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권력을 나누는 규정이 필요하다.
이번 개헌안에는 대통령제에 대해 4년 연임제로 바꾸고, 총리 역할을 규정한 헌법 제86조 2항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구절 가운데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책임총리가 아닌 독립총리다. 총리 권한이 상당히 강화된다고 해석되나 보다 분명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내용이 거의 없다. 현행 5년 단임제의 단점은 조기에 레임덕이 오거나 임기 말에 대통령의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4년 연임제가 5년 단임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일 수는 있다. 문제는 '4년 연임제냐, 중임제냐'가 아니다.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권한을 총리와 나눠야 한다. 책임총리제 같은 제도가 필요한데, 문 대통령 개헌안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여전히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이를 보완하려면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거나 추천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2018년 4월 1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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