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단숨에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생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사명은 삶에서의 순종입니다. 영적 쉼에 대한 조용한 준비는 힘을 더하는 또 하나의 사역입니다.
어느새 찾아온 100세의 삶, 그것은 얼마나 쉼이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가끔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의 오만함이 쉼을 부끄럽게 합니다. 평생목회를 꿈꾸며 원로목사님들을 만납니다. 오직 주님의 복음 하나로 일생을 바친 위대한 전도자의 주름진 손을 잡아봅니다. 아직도 따뜻한 열정이 가슴으로 흐릅니다. 말도 느리고 발음도 꼬이지만 하나님의 숨결 같은 호흡입니다. 서로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조용한 만남도 믿음과 동행하는 자리입니다. 비오는 날의 우산처럼 모두가 필요한 동역자들 입니다. 아내도 아프고 누가 누구를 보살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늘을 보고 살았던 존엄처럼 거룩한 자리를 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은퇴하신 교계의 원로목회자를 존경과 명예로 예우해야 합니다. 그 분들이 다시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드려야 합니다.
흔히 "목회는 은퇴해도 사역에는 은퇴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회에서도 직장을 은퇴하면 자신의 전공과 경험을 살려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로라는 단어는 호칭의 문제를 떠나 더 큰 명예의 의미가 있습니다.
근대 문명의 황혼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문명 비판적 세계관' 만큼이나 내 아픔에 대한 정리는 바로 쉼이 아닌가 쉽습니다. 흘러간 과거 속에도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울었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하나님을 향한 죽음의 순종도 떠오릅니다. 원로목사님들의 현재는 그렇게 이루어진 쉼입니다. 이제 당당한 걸음을 걸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소명과 사명을 평생목회로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지배합니다. 몰락한 제국의 역사가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볼테르의 독설이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에 이르면 패륜이 됩니다. 그에게 따뜻한 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마 영성깊은 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겸손과 절제는 사라지고 과도한 확신이 남은 상처입니다.
이제 원로목회자님들의 쉼을 마련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황혼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상상하는 거룩한 의자를 놓았으면 합니다.
'종로에 나오면 목자카페가 있어 참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 분들의 더 큰 쉼을 위해 우리는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내일을 꿈꾸고 준비하는 노병의 미소는 내일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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