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으로서의 아랍
아랍(Arab)은 지리적으로 아라비아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아랍인(Arabs)은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스마엘 후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다윗의 용사들 37명 명단에도 아랍 사람(the Arabite) 바아래(Paarai)가 있는 데 그 계보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단순히 아라비아에 살던 사람들을 지칭하던 이 <아랍>이라는 말은 이후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데 그 약사(略史)는 다음과 같다.
아랍의 약사(略史)
성경 외 <아랍> 용어의 최초 기록은 주전 853년 앗수르 비문에 나타난다. “앗수르왕 살만에셀 3세(주전 858-824)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왕자들에게 <아랍>의 긴네브라는 사람이 낙타 1천마리를 주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후 주전 6세기까지 앗수르와 바벨론 비문들에 <아랍>이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 비문들에서 <아랍>은 주로 아라비아 북부 시리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을 지칭하였다.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도 아랍은 도시민이 아닌 유목민을 지칭한다(즉 이슬람 주요 도시인 메디나나 메카 주민들은 유목민이 아니므로 아랍민이 아님).
무함마드 사후 아라비아어(아랍어)로 무장한 아라비아 이슬람인들의 정복활동 가운데 <아랍>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역적인 아라비아(<아랍>)를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북아프리카로 확산된다. 이때 <아랍>이라는 말은 단순한 유목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복자, 지배자라는 말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또한 도시인들도 아랍이라는 말 속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소아시아 내륙의 작은 소국으로 시작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강력한 이슬람 패권국인 오스만트루크제국(1299-1922)을 세운 오스만트루크 지배자들은 아랍을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여겼다. 따라서 아랍의 유목민을 <아랍>이라 했고, 아라비아어를 쓰는 도시 주민과 농민은 <아랍의 자식들>이라 불렀다.
이슬람의 확장 이후 규정이 모호해진 오늘날의 <아랍>
오스만트루크제국 이후 오늘날 아랍(아랍연맹 20여 개국)이라 불리는 지역과 문화와 사람은 너무 다양하여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우나 대체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아랍>으로 부르게 되었다. 일부는 <아랍>의 정의를 종교와 무관하게 여겨 아랍인 중에 아랍 지역에 속한 소수 기독교인과 소수 유대인까지 아랍인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성경은 단순히 혈통을 논하고, 세상은 문화적 의미로 아랍이라는 의미를 사용하는 듯하다. 즉 성경 시대의 아랍인은 단순히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7세기에 무함마드에 의해서 이슬람교가 열리고 정통 칼리파(khalifa, 알라의 수탁자, 대리자) 아랍 무슬림 세력이 중동 전역을 지배하면서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고 아랍어를 쓰는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확장이 되었다. 그럴 경우 이스마엘 후손들도 아랍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이스마엘 후손만이 아닌 중동에서 아랍어를 쓰면서 자신의 뿌리를 아랍문화에서 찾는 사람들의 공동체 모두가 범 아랍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결국 <아랍>이란 개념의 기본 본질은 인종(혈통)적인 성격보다는 셈어로서의 아랍어를 모어(母語)로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되었다. 여기에 이슬람 종교가 개입되면서 양상이 복잡해진 면이 있는 데 <아랍>이라는 개념의 기본 본질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이란인과 터키인, 쿠르드인은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동일한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민족들은 다른 아랍 민족들과 혈통이 뚜렷하게 구별될 뿐만 아니라 아랍어가 아닌 자신들 고유의 페르시아어, 터키어, 쿠르드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랍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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