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물은 흘러가는데 의미가 있고 그 묘미가 있는 것이다.
완류(緩流)는 완류대로 급류(急流)는 급류대로 물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왜 그러한가 물의 속성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며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면서 흘러내려간다.
그래서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위에서 흘러오는 물이 흐리고 탁류(濁流)가 될 때 인간 사회는 혼탁과 오염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일찍이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희랍의 철인 헤라 클레이 토스는 ‘판타레이’ 즉, ‘만물유전의 원리’를 말하였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 원리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 시켜야 하는 것이다.
위에 계신 분들은 자신이 맑아지면 이 사회는 자연 적으로 맑아지고 깨끗해진다는 사실을 기 억 해야 하는 것이다.
맑은 거울처럼 펼쳐진 산중의 호수를 바라 볼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 깨끗하다.’고 말할 때, 이런 물이 옥수(玉水)요, 정말 살아있는 물이며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주는 자연의 물인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 온지 벌써 복음이 들어 온지 2세기를 접어든 지도 한창이다. 과거 1세기의 연륜을 가진 한국 교회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 역사에 비하여 20분의 1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를 통하여 오늘의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보다나은 성숙한 미래를 향한 도약의 설계를 해야 하겠다.
그런 오늘의 현실을 진단 할 때 근본적인 문제는 여러 진단이 나오겠지만 우선적인 것은 사회에 대한 교회의 공신력 문제이다.
교회를 향한 사회인들의 눈초리가 교회는 믿을 수 있는 민족의 소망이요. 여기만이 참 정신적인 빛이 있다고 기대하는 그 같은 요구가 외면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글ㅣ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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