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구약 성서 <출애굽기 32장>에는 하나님과 모세 그리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역으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파노라마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세기 하나님의 명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갈 때 그의 형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잘 다스리라고 ‘지도자로 내세운다. 그러나 아론은 그 임무를 망각하고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며 광란의 춤에 도취하게 된다. 모세가 하산하여 그 광경을 목격하고 질책을 하자 죄책감은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 사건을 떠 올리는 것은 오늘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한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영매에 사로잡힌 자와 그 의 딸을 중심으로 한 부역자들과 지도자가 함께 비선 실세와 놀아난 현실들이 어쩌면 그렇게 유사해서 하는 말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그 본분을 망각 하였을 하였을 때에 국민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비참함을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와 같이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매몰되어 있거나 현실적 이해타산에 어두워져 판단력이 부족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명확 관아한 일이다. 요즘 상환은 날이 새면 어떤 일이 또 들어날지 모르게 하루가 멀다 하고 비선 실세들의 추악한 모습들이 비쳐지고 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어디까지가 끝인지 예측 할 수 현실에 광장으로 몰려든 시민들의 목소리는 산하에 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교회의 목소리는 무엇일까? 교회에는 교회다움이 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정의를 외면 할 수 없다.
역사 이래 교회는 정의가 위협을 당하고 굴하지 않고 교회의 모습을 견지해 왔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때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성서의 가르침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일 진데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 사명을 가히 상실 한 것 같다.
나단 선지자는 엄청난 부와 권위를 소유한 다윗의 악행을 정면에서 반박하며 그가 잘못을 깨닫고 새롭게 될 것을 촉구 했다. 이러한 외침이 진작 있었더라면 오늘의 사태는 최소한 방지 되었을 게 아닌가? 지금 이 나라 뿐 아니라 교계에도 양분되어 있는 추세이다.
한편은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교회도 볼 수 있고 또 한편 ‘박사모’ 라는 단체에 가서 비리와 헌정을 짓밟은 대통령을 지키자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어느 한편을 두둔 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은 어디가 잘못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인데 도무지 그러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의 명령을 거역하고 주인에게 대드는 태도가 보여서야 말이 되는가 말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고’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잘못 휘 둘렀다면 당연히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군(軍)에서 이러면 ‘명령 불복종, 체포대상’이라고 말한 전 헌법 재판소장의 말도 떠돌고 있다.
성서는 우리기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정의한다. 썩어가는 부위는 더 이상 부패하지 않게 하고 어두움으로 그늘진 곳이 있다면 빛으로 어두움을 제거해 주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이제라도 한국 교회는 자신을 직시하고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을 외면하고 가진 편에 서거 나 아론과 그 일당들이 황금 우상 앞에 놀아난 죄가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된 모습과 구체적인 행동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일터와 미래의 희망을 상실 한 젊은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어려운 삶을 호소를 듣는 일과 사랑의 손길을 펴는 일에서부터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말해야 할 대에 오히려 평안을 외치고 성공 과 축복의 메시지가 난무하지 않았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 한국 교회가 청와대에 자주 드나드는 교계 지도자들이라도 이러한 의식이 있었더라면 오늘 날과 같은 참담한 상황은 보지 않았으리라. 이제 광장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정의는 죽지 않았다’고...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입성 하실 때 군중들이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소리를 지르자 시샘 하는 이들이 만류하니 예수님은 ‘이들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고 민중의 소리를 들으라 하셨다.
이래저래 우리의 수심은 깊어만 간다. 이때가 바로 기도할 때임을 잊지 말자.
글ㅣ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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