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반공 만화’ 똘이장군을 아시는가? 비록 흑백TV이긴 했지만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그리고 반드시 이기고 마는 조그만 똘이장군의 활약은 동심을 부푼 꿈으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 결론 부분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마침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악의 우두머리와 맞서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똘이장군. 그런데 우두머리의 최후는 너무나 시시했다. 거대한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우두머리의 허상이 무너져 내리자 그 허상의 틈으로 조그만 새끼돼지 한 마리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허망한 끝이었지만 그 교훈은 컸다. 보잘것없는 새끼돼지지만 거기에 엄청난 허울이 씌워지고 그 목소리가 확대, 재생산될 때 그 새끼돼지는 권력이 되고 마침내 사람들은 거기에 굴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어린 눈에 그 허상과 새끼돼지는 분명 북한 김일성이었다.
그런데 어릴 적 똘이장군의 결말에서 느꼈던 그 허망감을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의 일정, 연설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문화·스포츠, 각종 개발, 외교, 대북관계에까지 손길을 뻗친 비선실세이고 보면 무시무시한 존재임이 분명할 텐데 막상 국민 앞에 드러난 그 인물은 사교(邪敎) 교주의 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 명의 기가 센 아줌마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그가 ‘개성공단 폐쇄’라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논의하고,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지도 모를 사드 배치 결정에 관여할 수 있었을까?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 그리고 그를 방조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야 말로 국정농단의 최종 책임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결정의 책임자인 장관들의 책임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개성공단 완전 중단(폐쇄)은 통일부의 ‘잠정 중단’ 방침과도 배치되는 느닷없는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통일부장관은 설날 연휴에 발표 당사자가 되어 북핵 운운하며 남북 민간교류의 최후보루인 개성공단 폐쇄 논리를 강변했다. 사드 배치 결정 또한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하며 외교부 등이 반대했지만 국방장관은 전격 발표했다. 북한체제 붕괴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공개 발언도 이어졌다. 대통령의 비상식적·반이성적인 조치와 언급들을 관련 장관·비서관들이 앞장서 반대했다는 기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만약 그런 소신 장관·비서관들이 대통령 곁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은 자신의 조치와 발언에 앞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고, 그 조치와 발언을 놓고 공론이 벌어졌을 것이고, 마침내 대통령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장관·비서관 한두 명이 더 반대 소신을 지켰다면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조치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대통령이 처한 사면초가의 상황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장관·비서관의 소신은 대통령도 대한민국도 구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 시대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설 자 누구인가? (에스겔 22장 27~31절)
/글·사진=평통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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