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현대를 가리켜서 ‘푼수 시대’ 라고 한다. 좀 모자라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 “분수 상실 시대를”그렇게 줄여 부른다고 한다. 분수도 모르는 네온 싸인 족이 활개를 치는 시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네온 싸인 족들은 뭐냐? 네온 싸인이 번쩍이는 제 분수도 모르고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과소비를 부축 인다. 루소는 환자에게 절제를 처방하는 의사보다 더 훌륭한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회복 시켜 줄 의무가 있고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을 스승은 제자에게 지혜를 알려 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과 행복, 지혜의 근본인 절제하는 생활이다.
그런데 돈과 시간을 물 쓰듯 하고 정신을 물 쓰듯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넘쳐서 과소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타락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다문화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음식이 풍족하게 배달된다.
식물성, 해물류와 육류 등 반찬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본인이 입맛에도 고량진미이다. 그런데 “목사님, 우리 교포들은 그런 음식 안 먹습네다”하며 튕귄다. 그러나 음식 솜씨가 있는 강모 여사는 기본 재료에다 간을 첨부하고 조미료를 가해서 음식을 조리하는데 맛이 일품이다.
어제는 얼마 전에 찹쌀을 일반 미에 섞어 먹으려고 사두었던 것이 바구미 벌레가 생겨 밖에 널어놓으니 교포 한분이 당장 내다 버리라고 성화다. 버리기가 아까워서 반을 남겨두고 지나가는 재활용을 하는 아줌마께 드렸더니 참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전통 한국인들은 쌀 한 톨도 아꼈으며 버릴 것이 없었다.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고장 난 것은 고쳐 쓰고 바꾸어 쓰기도 하고 나누는 정이 풍부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그러한 미풍은 사라지고 있다.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미풍이 되어가고 있다.
배 곪던 시절을 경험한 우리 시대의 눈에는 ‘호기심’ 보다 ‘저러고도 벼락 안 맞겟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요리사라는 좋은 우리말을 밀어내고, <셰-프>라는 서양어를 유식한 척 더 선호한다.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을 때 후발국 독일이 영국을 추격해 오자 영국 국민들은 “국가적 위기”라고 모두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이 미식(美食) 열풍에 빠져 들었다. 맛집을 찾아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와 이태리까지 맛을 찾아 나서는 순례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오늘 우리 사회가 100년 전의 저 영국과 닮아가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음식 잔반으로 내 버려 지는 음식이 어느 정도냐 하면 북한 주민 전체가 한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전국 곳곳이 지나친 낭비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쓰레기 처리 문제 때문에 대 홍역을 치루고 있다.
금년 추석 명절을 보내고 나니 골목마다 음식 쓰레기통이 넘쳐나고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한다. 우리부터 ‘절제의 은사’를 발휘 하자.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충분히 부요해 진사람 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얼마든지 적게 먹고 절제 할 수 있다.
지구가 지니고 있는 자원은 한정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벳세다 들판에서 큰 무리를 먹이신 후에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 하셨다. 아끼고 절약 할 때 귀한 줄 알게 되고 감사하고 만족하게 된다.
편리주의, 낭비주의, 사치를 경계하고 절제의 미덕을 세워 나감으로서 그리스도인다움을 널리 펼쳐 보이도록 하자.
그러나 금번 추석 명절에도 “버리지 말라”는 말을 건넷다가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 할 뻔 하였으니 이 운동을 펼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주님의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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