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벨론 제국은 일찍부터 남다른 문화를 이룩한 문명국으로서의 명성이 높았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그들이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여 탑을 건설하고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11:3-4)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인류 문명의 시작입니다. 그들은 자연석 대신 사람의 기술로 만든 벽돌을 쌓아 올렸고, 진흙 대신 역청 즉 아스팔트를 성곽 외벽에 발라 마감을 했습니다. 이는 자연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른바 테크놀로지의 발단이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그 성탑을 하늘에 닿게 하겠다며 높이높이 쌓기 시작했습니다. 대지로부터 멀면 멀수록 그만큼 발달된 문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지금도 경쟁적으로 초고층 랜드마크를 세우며 자신들이 최고의 문명국임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바벨론 제국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한 것은 인간의 자주성 선언이자 자기 과시로 이는 곧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원초적인 문명의 정의(定義)를 분명히 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의 그 웅대한 탑 건설이 그만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기 때문이라>며,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므로>(11:6)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실로 인류 문명의 본질을 꿰뚫어 보신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명이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한 것처럼 그 한계를 모릅니다. 따라서 문명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 자체의 자율성으로 인해 누구도 더는 통제하지 못하며 마침내는 그것을 낳은 인간마저도 배제하고 소외시키고 맙니다.
최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알파고 같은 AI를 경계하며 우려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언어를 혼란케 하사 전격 바벨탑의 건설을 중단시키셨다는 것은 우선 하늘을 찌를 듯 기고만장했던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심판이자 최종적인 자멸을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란케 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언어란 단순한 기호가 아닙니다. 이해의 전달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혼란과 단절은 곧 이해의 혼란, 소통의 단절을 가리킵니다. 하여 <언어의 혼란>이란 곧 사회 계급의 형성을 뜻하기도 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불통을 뜻하기도 하며, 서로 간의 소통의 단절로 말미암은 극심한 불신 사회의 조장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언어의 분열과 불통이 마침내 그 사회의 분열과 그 시대 문화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전하면서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의 방언 사건은 자신의 언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자리에 서서 서로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 소통의 가장 모범적인 원형이었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통하며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2:6-8절).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소리를 말살하며 오직 자신의 언어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정의와 평화가 설 수 없습니다. 과거 바벨론 제국이 그랬고 로마 제국이 그랬습니다. 그게 소위 <팍스 로마나>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강림절의 방언이야 말로 그런 일방적인 언어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출신, 문화, 계급, 성별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영> 안에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대등하게 인정받는 새 질서의 세계, 모두의 뜻이 서로 통하고 누구의 언어든 존중되고 용납되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형>, 부디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강림절의 방언의 의미를 보다 진지하게 깨달으셔서 이 시대를 위한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새삼 깊이 확인하시는 성도들 되시길 빕니다.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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