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계를 대변하는 한겨레신문이 4월 26일자 <사설>을 통하여 “혐오 앞세운 ‘극우 기독교’ 정치화, 위험하다”는 제하의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을 보면, 가관이다. ‘극우 기독교 정당이 활개 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상식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극우 기독교 운동은 이번 총선에 앞서서도 우리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한 ‘서울시민 인권선언’이 기독교의 반대운동으로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진’이라는 한겨레신문의 판단이 제대로 된 사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의 표현대로, 이런 법안들이 기독교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맞는다면, 퍽 다행스런 일이다. 이는 악법이라 불릴만하고, 우리 사회를 어려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독소 조항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 현상과 결과에 대하여 책임질 사람들은 없는 가운데, 기독교가 우리 사회를 지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 언론 한겨레가 그렇게도 옹호하고, 이를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공격 비난하는 ‘차별금지법’이나 ‘동성애’ 문제가 우리 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부정적 파장과 영향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가? 군대 내에 동성애가 합법화 되었을 때, 국가안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가? 모르지 않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재 미국과 일부 유럽에서 번지는 동성애를 포함한 차별금지법은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적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수십 년을 고민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차별’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고, 오히려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이를테면 표현의 자유와 자녀의 교육적 선택을 가로막는, 비인간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가 그렇게도 비난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음란퇴폐 문화와 법적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오히려 ‘문화 사대주의’의 전형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고육책으로 기독교 정당을 만들려는 것도 기존의 정당을 통한, 지속적인 ‘악법 저지’를 위한 것이 쉽지 않으므로, 기독교 정당을 만들려는 것인데 이를 비난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건강성을 지키려는 발로임을, 왜곡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누가 욕먹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지금 어떤 종교가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종교적 입장에서 의견을 내고, 행동하고 있는가? 모두 시류에 영합하여 안일과 침묵 속에 숨어 이미지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기독교는 그 폐해와 결과를 예견하고 애국적 관점에서 이 같은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겨레는 속단하거나, 의도성을 가지고, 기독교를 극우 세력으로 몰아가지 말라.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극우라고 비난한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라를 망치는데, 앞장서고 있는가?
한겨레가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는, 기독교는 결코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속에 담고 있는 몇 가지의 ‘독소조항’으로 인하여, 양심적이고, 상식적이고, 건강한 시민 정서를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이 법적으로 ‘역차별’을 당함으로, 국가가 겪게 될 혼란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한겨레는 사설에서, ‘소수자 차별과 약자 혐오는 박애와 관용을 가르치는 기독교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 한다’는 것으로, 기독교에 훈수를 두려하고 있다. 이는 본질을 호도하여, 기독교를 비난하려는 저의가 분명하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약자를 혐오하거나 소수자를 차별한 적이 없다. 다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동성애’가 소수자인가? 언론이라면 ‘성적소수자’라는 단어를 알고 사용하기 바란다. 성적소수자에는 소아성애자, 기계성애자, 동물성애자, 시체성애자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인권보도준칙”을 만들어, 동성애의 실상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현실과,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들이 편들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동성애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유엔의 옹호를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오히려 양심과 천륜을 지키려는 노력과 인간다움을 위해 싸우는 기독교가 소수자가 아닌가?
한겨레는 감히 기독교를 향하여 ‘기독교계 전체가 각성해 참다운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는 자정운동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동성애를 반대하고,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따르자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동성애의 결말이 어디로 향하는 지를 뻔히 알면서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조요, 이것이야 말로 혐오가 아닌가?
신군부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 위험하고 엄혹한 현실에서 태어난 한겨레신문은 그 지원의 중심이 기독교였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한겨레는 언론의 권력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과 뜻에 맞지 않으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이렇듯, 우리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가르고, 갈등과 분열을 일삼는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
한겨레가 제대로 된 언론보도를 하려면, 기독교의 활동과 정당을 만들어서라도, 사회적 병리현상을 막으려는 의도를 정확히 보도하는 것만이, 정직한 언론의 정도(正道)임을 분명히 충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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