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손현정 기자] 미국 목회전문 인터넷매체 '처치리더스'가 최근 '교인들을 망치는 목회자들의 행동 10가지'란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을 쓴 미국의 목회 전문가이자 기독교 작가인 조 맥키버(Joe McKeever) 목사는 먼저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선택하신 자들이지만 인간이기에 결점과 실수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흠이 있고 넘어 지기 쉬운 자들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랍도록 크신 은혜와 자비를 보여 주는 것이다"고 칼럼이 단지 목회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것만은 아님을 밝혔다.
그는 "이들 잘못된 행동들은 내가 속한 지난 세대의 목회자들이 해 온 일들이다. 우리는 목회자로서의 올바른 역할이 무엇인지 찾고 있는 젊은 목회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목회자들이 지난 실수를 돌아보고 모범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다.
다음은 그가 꼽은 '교인을 망치는 목회자들의 행동 10가지.'
1. 사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교회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 왔다.
문제는 우리의 근시안이다. 교회에 갈등이나 분열이 있으면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만족과 칭찬이 계속되면 잘하고 있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보지 못하고 사람이 하는 작은 일만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의 시각은 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옮겨간다. 우리는 교회 목회자의 주일예배 설교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2. 선교를 위해 기도보다 헌금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 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다. 돈을 세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도를 세는 것 역시 가능한가? 헌금 목표액을 얼마만큼 달성했다고 공표할 수는 있어도, 보르네오나 말라위 등지에서의 사역을 위해 '충분한' 기도가 이뤄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을 기도보다 강조하는 일이 생긴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 기도 빼고 모든 것을 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3. 선교는 '선교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는 교인들의 게으름뿐 아니라 목회자들의 게으름과 관련된 문제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은 목회자들만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선교팀이나 복음전도자, 선교사 같은 '선교 전문가'가 하는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고 교인들의 역할은 헌금을 하는 데서 끝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목회자들 역시 게으르기에 교인들의 생각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선교를 맡을 사람을 충원하고는 한다. 우리는 선교에 참여해야 할 자신의 의무로부터 도망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을 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4. 교회 리더십에 대해서도 세상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무엇이 뛰어나고 훌륭한가에 대한 우리의 세상적인 기준이 문제다. 목회자는 교회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더 유능한 사람으로 경질해버릴 수 있는 축구팀 코치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세상적인 기준을 변화시켜 주지 못하고 때로는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포도원 일꾼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이사회 같은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5. 교인들에게 기도하라고만 하지 방법을 가르치지도 모범을 보이지도 않았다.
목회자는 기도뿐 아니라 청지기적 삶, 세계선교, 화합과 연합 등 모든 영역에 대해서 계속해서 가르쳐야 하기에 한 영역을 충분히 다룬다는 것이 어렵다. 또한 목회자가 단순히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도 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따라서 힘을 상실한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6. 교인들의 기호와 편견에 부합해 왔고 우상숭배를 모른 척 해 왔다.
어떤 곳에서는 축구가 '하나님'이고 모두가 축구에 맞춰서 일정을 짜야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지역 축제가 '하나님'이다. 그러나 목회자는 인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 이러한 우상숭배에 대해서 강단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미국에서는 인종주의가 팽배한 곳이 있고 교회가 그 중심이 되는 곳이 있다. 우리는 목회자가 지역인들에게 모든 것을, 심지어 복음까지도 맞추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7. 교인들의 말씀에 대한 무지를 웃어 넘겼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는 죄악이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먹고 사는데도 주중에는 성경책을 집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몇 번 뒤적이는 것이 끝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쉬울지 몰라도 성경을 꾸준히 열심히 읽도록 가르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라면서도 막상 그 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8. 주님의 임재하심을 찬양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주님을 무시해 왔다.
우리는 매일 같은 예배에 익숙해져서 예배를 준비하면서도 우리의 계획에 따르지 성령의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기계적으로 찬양, 기도, 설교, 봉헌기도, 광고 등의 순서를 채워나갈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그 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항상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이를 실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9. 목회자직을 유지하는 것을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보다 더 우선순위로 삼아 왔다.
우리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가 지불해야 할 고지서들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교육시켜야 할 책임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종이 독신인 것이 더 낫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목회자직을 유지하는 것이 주가 된 목회를 통해 우리는 목회자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10. 하나님의 칭찬을 사람들의 칭찬과 맞바꿔 왔다.
인기 있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원해서 더 긍정적이고 재미있고, 듣기 좋은 메시지만을 전한다. 그러나 의사는 좋은 소식만을 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때로는 안 좋은 소식도 전해야 하는 법이다. 우리의 자아중심적인 목회는 똑같이 자아중심적인 교인들을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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