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해 6월 한국교회사학연구소 세미나에서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박창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가 강연을 했다. 90세가 넘은 박 교수는 "장로교가 분열되고 하는 동안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어 모든 실상을 체험했다"며 여러 일들을 '증언'했다.
"1950년 전쟁나는 해 4월 총회에서 한경직 목사가 합동안을 냈다. 조선신학교 측에서는 자기들 잡아먹으려는 것을 아니까 그냥 둘 수가 없으니 총회에서 의자가 날고 화분이 날고 난동이 일어났던 거다. 그래서 정회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 6.25전쟁이 났다"
두 학교의 합동안은 학문을 중시하는 한경직·김재준·송창근·최윤관 목사. 프린스턴 4인방이 설립한 조선신학교를 없애기 위해 장로회신학교 측에서 쓴 첫번째 술책이라고 했다. 합동해서 보수주의 교수들만 남겨 놓은 식으로 하려는 것이었다고 박 교수는 말했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신학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혜암신학연구소에서 발간한 <신학과 교회 제2호 2014 겨울>편(編)에 나온 특별대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를 읽고 난 후 생각나는 한 장면이었다.
'보수' 진영을 대표해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가, '진보' 진영을 대표해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 김균진 박사(연세대 명예교수)가, '중도'의 입장에 선 강근환 박사가 지난해 10월 15일 나눈 특별대담에서 의자가 날고 화분이 날아다니는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서가 아니다.
64년이 지나 전해 들은 것이지만 1950년 4월 총회 장면이 기자가 알고 있는 진보와 보수의 '깊은 골'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장면이 기억난 듯 싶다.
이 특별대담은 골이 깊게 패인 진보와 보수 신학계의 골을 메우는 작업으로 보였다. 한 몸된 지체에 피가 통하지 않게 되듯 진보와 보수가 통하지 않게 된 그리스도의 몸된 한국교회를 돌아보게 하고,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
상처가 깊으면 작은 터치에도 큰 아픔을 느끼게 된다.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도, 그 갈등이 깊어 서로의 행보에 일면 비상식적으로 여겨지는 예민한 반응들을 보이게 되는 것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번 대담은 이 갈등과 상처를 치유해내는 길, 대화하며 오해를 풀어내는 일이 필요하고, 가능하리라는 것을 보여줬다.
'진보? 보수?',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 '성경', '예수 그리스도', '성령', '사랑', '한국교회의 개혁' 을 주제로 진행된 대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발언은 보수를 대표한 김영한 박사와, 정일웅 박사의 발언이었다. 이들의 의견은 '보수주의자'에 대한 선입관을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보수도 스펙트럼이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성경'에 관한 주제로 대담하며 축자영감설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김영한 박사는 "저는 축자영감설을 믿는다"며 "특별히 예언서의 경우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말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선지자들이 받아 적은 것이다. 그리고 에스더나 룻기를 보면 하나님의 개념도 나오지 않는 성경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의 여과를 통해 정리된 것이다. 저는 이처럼 축자영감설을 넓은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오의 개념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며 "말씀을 실제로 읽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성경에 관한 신학적 견해를 근거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대담을 진행한 사회자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신학과 교회' 편집위원장)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에 가두지 말라는 말씀이시지요"라고 응답했다.
강근환 박사는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하시지만 김균진 박사님 말씀하신대로 목적영감설에 가까운 입장이다. 김영한 박사님이 말씀하신 축자영감설 자체가 언어적인 함축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축자영감설의 주장과 다른 것 같다"고 평했다.
김영한 박사의 발언에 대해 김경재 박사는 "김영한 박사님의 견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합니다만 일반 교회의 현장에서는 신학자들끼리의 이해가 그대로 통용되지 못한다. 현실적인 사건을 예로 볼 때 모 신학대학교에서 여성들을 목회학 과정에 입학시키지 않으려는 근거는 성경이다. 여성들은 교회 내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을 들고서 이러한 논리를 펴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신학적인 담론을 동원하더라도 이와 같은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오해를 해소하지는 못하는 것이다"며 "대석학인 김영한 박사가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말했다라면서 WCC에 대해 반대하고 여학생을 신학대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김영한 박사의 학문적 권위를 빌려서 자신들의 견해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김균진 박사는 "여성신학계에서 성서무오설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는가? '여자는 남자의 갈비대로 만든 것이다'라는 말씀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에게 늘 예속되어야 할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글자 자체보다는 그 글자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총신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한 정일웅 박사는 "보수신학이 그 동안 근본주의적인 차원에서 축자영감설을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아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적 맥락에서 기록되었다는 목적영감설적인 관점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의미 등 두가지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축자적으로도 우리가 존중할 뿐아니라 성경이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역사하신 것을 증언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구약의 율법들이 복음의 관점에서 극복되고, 복음이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하는 삶의 법칙을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혹은 영감을 받은 말씀이라고 믿는다"며 "구속사적인 측면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측면이 계속된다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정일웅 박사는 "보수적인 교회는 축자영감설이라는 교리적 주장으로 성경의 권위를 옹호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책으로, 성경 자체가 진리를 옹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주장하는 교리가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그 말씀 자체가 권위를 가진 것이지 인위적인 교리가 어떤 권위를 부여했다고 해서 성경의 권위가 거기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경재 박사는 "정 박사께서 축자영감설의 교리가 말씀 자체가 갖고 있는 진리의 힘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박형룡 박사가 과연 축자영감설을 가르쳤는지는 차지하고, 장공선생이 그분과 대립할 때의 중요 이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장공이 입장이 무엇이냐 하면, '소위 성서기자들의 마음을 성령이 감동 감화시켜서 성경 전체가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영감을 주어 쓴 것이다'는 것이다. 이것을 목적영감설이라고 표현했다. 축자영감설에 대해서 장공은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고 했다.
또한 마지막 주제였던 '한국교회의 개혁'에 관한 대담을 통해 신학과 목회의 현장을 이어주는 시도도 신선했다.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학자들의 순수함으로 한국교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현장에 들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정일웅 박사는 "한국교회의 보수적 교회들은 사회와 이웃이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건이 나더라도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점을 솔직히 지적하고 싶다"며 "행동하는 믿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잖은가? 그 행동은 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을 놓친 믿음은 본회퍼가 말했듯이 값싼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이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영한 박사는 "소위 세계 10대 메가처치 가운데 한국교회가 6개 있다. 메가처치가 6개나 있는 가운데서 미자립 교회가 85%나 되는 것이 한국교회의 기형적인 현실이다"며 "이 점에 있어서는 초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각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벌교회를 지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를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재벌을 추구하는 것은 그 나름의 논리가 있다. 하지만 교회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들이 솔선수범해서 자기의 교회를 정말 내려놓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미흡한 지식이지만 목회적으로 평가할 때 교인수가 대략 500명 정도가 되면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이상적인 규모라고 볼 수 있는데, 교인수가 천 명 정도로 넘으면 그 때는 선의에서 분립해야 하는 것이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균진 박사는 "하지만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일선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은 꿈쩍도 안 한다. 그래서 각 교단이 그 교단에 속한 교회들의 개혁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서 교회개혁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법적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우리에게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도 꿈쩍도 안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광선 박사는 대담을 마치며 "우리가 장장 4시간을 넘게 이야기했는데 아마 독자들은 우리 선생님들의 사진을 함께 보면서 도대체 이 양반들이 모여 앉아서 무슨 싸움을 했을까를 먼저 살피려고 그럴 것이다. 제 생각에는 그 분들이 실망을 할 것 같다. 이 좌담에서 사실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고 그 사랑을 구현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랑'을 주제로 대담을 시작하며 서광선 박사는 "우리의 논쟁은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다 녹아난다. '천사의 말을 할 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눈물 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서로 큰 소리 치면서 보수다 진보다 주장하는데 그때는 고린도전서 13장이 없어져버린다"고도 했다.
'보수'가 생각하는 '진보', '진보'가 생각하는 '보수'가 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때로는 '수군수군'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대화해야 할 것이다. 성숙한 진보와 보수의 '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대담이 보여주었으니 용기를 가지고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회복의 길, 사랑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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