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덕수궁 구세군제일영문에서 한국구세군을 이끌 제24대 사령관에 박종덕(63) 부장이 취임했다. 박 신임 사령관은 이날 설교를 통해 구원 사역에 집중할 것과 성결을 강조하며 참된 구세군(Salvation Army, 救世軍)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했다.
기독일보는 지난 18일 충정로 구세군대한본영 6층 사령관실에서 박종덕 사령관을 만나 구세군 발전을 위해 그가 그리는 청사진을 함께 그의 신앙과 구세군의 비전을 들려다 봤다. 본지는 이를 두 차례 나눠 자세히 게재한다. <편집자 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구세군대한본영 6층에 마련된 구세군 사령관실은 비교적 아담한 크기로 들어서자 마자 구세군의 상징과도 같은 '자선냄비'가 눈에 띈다.
약속 시간을 좀 넘겨 도착한 기독일보 취재진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 박종덕 사령관에게는 지난 8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한국 기독교 역사 100장면을 선정해 엮은 <기독교, 한국에 살다> 출판기념회에서 서기장관으로서 설교했던 당시의 학자적 인상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인천 부평 태생인 박 사령관이 구세군 병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였다.
"부평 외곽 지역 농촌지역에 살다가 이사를 간 게 구세군 교회에 있는 바로 옆집이었죠. 집 대청마루를 열면 바로 구세군 교회 마당이었어요. 게다가 그 교회 사관님 아들이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고, 바로 이웃집에 살고 우리반이니까 걔한테 끌려서 구세군 교회에 갔죠."
중학교 진학 후 친구와 멀어지면서 자연히 구세군과도 멀어졌던 박 사령관은 고등학교 2학년에 회심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때 2학기 말정도 됐는데 (구세군 교회에) 새벽기도부터 나갔는데, 그날이 주일 아침이더라고요. 주일 새벽 아침기도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구세군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세군 사관이 된 것일까. 딩초 사관이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박 사령관은 작은 서원기도가 사관이 된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사관이 된건 군대를 가기 전에... 구세군청소년모임이 있는데, 서울에 지금 저 덕수초등학교 위 덕수궁 뒤에 중앙회관이라고 하는 오래된 홀이 있습니다. 거기서 서울 인근에 있는 청소년들의 대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에 애들이 서울 경험이 없으니까 담임 사관님이 박선생이 얘들좀 데리고 갔다 오라고해서 인솔해서 갔습니다."
■ 구세군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선택한 '사관의 길'...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
"집회 다 끝났는데 마지막 설교를 하고서는 한분이 나와서 뜨겁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될 사람들 앞으로 나와서 헌신을 다짐 해라!'하며 아주 강하고 뜨겁게 권고를 하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인솔자로서 저 앞에 나가서 해야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관 된다거나 주의 종 된다거나 그런 생각도 안했었고요."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약속 드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으로 보나 가문으로 보나 다 자기들만 위해서 살았지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살아본 일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약속 드리는 건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사회를 유익하게 하고 남을 돕는 남을 위해서 사는 그러한 삶을 살겠습니다' 이렇게 서원을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사관이 되기전 세관 공무원 생활을 먼저했다는 박 사령관은 4개월 남짓한 경험이었지만, 술과 접대 등 타락한 세상 문화와 생리가 아주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상사가 행정고시 준비해서 제대로 공무원 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도 있어 공부할 심상으로 회사를 그만뒀는데, 마침 교회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그는 담임 사관이 자신에게 기회만 나면 구세군 사관이 될 것을 권했다고 한다.
"저는 (구사군 사관이 될) 생각 없었어요. 그래도 그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기회만 있으면 그 얘기를 해요. 한 일년쯤 그 얘기를 듣다보니까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철야기도를 하거나 기도원을 가거나 그러면 우리 사관님이 하는 얘기도 자꾸 생각이 떠오르고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하다 보니까 이것이 군대 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약속드린 길인가?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을 하고 기도를 하다가 제가 응답을 받았어요. 그래서 길이 틀려져버렸죠. 이쪽을 놓고 사관이 되는 길을 택해서 구세군 사관이 됐다. 처음에는 구세군 내막도 몰랐어요."
주님의 뜻밖(?)의 인도로 구세군 사관이 된 지금, 박종덕 사령관은 '구세군이 되고 보니 어떤 점이 좋냐?'는 질문에 <자유>라고 이야기 했다.
"구세군이 계급사회이니까 딱딱할 것 같죠. 천만에요. 다른 교단보다 자유가 훨씬 많은 게 구세군입니다. 굉장히 (자유가) 많습니다. 구세군에 성직자들의 삶이나 사역이나 규정해 놓고 질서를 담은 군영군율이 있습니다. 그 내용도 실상은 '이렇게 조항이 많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곰곰히 따지면 굉장히 자유로운 거에요. 굉장히 폭넓게 많은 것들 포용할 수 있고, 근본적인 면에서만 문제가 없다면 뭘 해도 돼요. 자유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어 박 사령관은 구세군의 열려있는 <신학적 포용력>을 강점으로 꼽았다.
"신학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들보다도 가장 성서적으로 보수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포용력이 가장 큰 교단이 구세군이라고 봐요. 사관들이 감리교나 성결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쪽 신학배경 가진 분도 있고 한국의 모든 신학교들의 신학배경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부에서 신학적으로 충돌되는 면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교리가 아주 성서적이고 핵심적인 근본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자질구레한 걸로 티격태격하는 건 우리 안합니다."
또 다른 구세군의 강점으로는 일반 교단이 신학대 졸업 후 사역할 곳이 부족한 것과 비교해 '100% 목회자들의 임지가 보장된다는 점이었다.
"목회자들의 100% 임지가 보장되는 교단이 어디 있습니까? 한국에서 루터교, 성공회 정도밖에 없습니다. 신학교 학생들 뽑는거 졸업시켜서 임명하는 거 딱 맞아 떨어집니다. 안맞으면 임지를 만들어서라도 보내는거지 '너 알아서 해라 없다' 없습니다. 교단이 다 준비하는 것입니다."
박 사령관의 구세군에 대한 자랑 아닌 자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것만 입니까? 저도 좀 있으면 은퇴하지만... 은퇴하면 구세군에서 먹여 살립니다. 집은 안주지만 호사스럽게는 살지 않아도 배 곯지는 않고, 큰병만 들지 않으면 노후에 큰 걱정 없이 지금 살아가는 것 같이 죽을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다 책임을 집니다. 그렇게 좋은 교회가 어디 있어요?" (웃음)
군대의 형식을 빌려 신학대 대신 사관학교를 나오는 구세군에서 동기 간의 끈끈함은 남다르다고 한다.
"구세군 사관 세계라는 것이 한 가족과 같아요. 사관학교 나올 때 기수가 있어요. 영어명으로 학기가 있는데, 저는 Companion of Christ(그리스도의 동역자) 학기에요. 전세계 내 동기가 모든 나라에 널려 있는 거죠. 전세계에 똑같은 학기명을 가지고 있고 그 분들이 다 내 동기입니다."
얼마전에 박종덕 사령관의 취임예배 때 영국 구세군 대장을 대신해 특사로 온 질리안 다우너 아태부장도 박 사령관의 동기였다고 한다.
"아태부장도 사진 보더니 나하고 같은 동기구나 하면서 반갑다고 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2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잘 때만 빼고 눈만 뜨면 같이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동기애가 어느 정도일지... 한 주님 한 성령 안에 한 말씀 안에 통전적으로 유기체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2년간 같은 솥에서 밥 먹고 반찬 먹고 나들이 하고 희로애락 나눈 거라면 어떤 걸까 상상을 해보세요. 다른 신학교에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 사령관의 가족은 둘째 아들만 빼고 모두 구세군 사역을 하고 있다. 특히 첫째 아들은 경북 청송에서 담임 사관으로 목회를 하고 있고, 그의 아내 윤은숙 부장은 여성사업총재로서 든든한 동역자다. 박 사관은 선배 목회자로서 아들에게 두 가지 강조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제가 아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게 '성실함과 열정'이에요. '성실함과 열정이 네 사역지를 일으켜세우고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확신' 이런 신앙적인 문제는 기본적인 얘기고, '삶이 성실과 열정으로 채워져있지 않는다면 어디에 가서도 네 삶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역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열정을 잃지 말고 하는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한다.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지 말라'고 늘 아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아내 윤 총재는 박 사령관에게 어떤 존재일까?
"제 아내는 구세군의 여성사업총재로서 한국 구세군의 많은 결정사항에 같이 참여를 합니다. 같이 한 멤버로 중요한 회의에 같이 참여해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저하고 늘 동역하면서 출장을 갈때라든가 중요한 모임에 같이 가서 자기 역할을 하고 조언을 해주고, 어느 교회 초청을 받아가거나 행사가 있어서 발언할 기회가 있으면 많은 경우 아내에게도 발언권이 주어집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 짧게 '토픽'에서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하죠."
구세군에서의 사관으로서의 여성은 단순히 남성의 조력자의 역할이 아닌 적극적인 동역자다. 이 같은 구세군의 열린 사고로 보통의 장로교나 감리교 등 주류 교단과 비교할 때 구세군은 양성평등이 비교절 잘 실현 돼 있다.
"(구세군은) 여성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고 현장에서 사역하는 것도 여성도 남성들과 같이 동역을 하죠. 교육도 똑같이 주어지고 사관으로 임명되는 것도 동일하게 임명되어지고, 다만 한 임지에 임명될때는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임은 있어야 된다는 차원에서 남자 위주로 세워지지만 여성에게 임지가 주어질 때는 (담임)사관으로 임명됩니다."
실제 구세군의 역대 20명의 대장 중 여성 대장이 3명일 정도로 여성들에게 열려 있는 구세군이어 그럴까, 박종덕 사령관은 대부분 교단이 여성의 교회 내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했다.
"자꾸 성서적 그렇게들(남성중심으로) 얘기하는데, 그거 바꿔야돼요.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는 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줬어요. 그래서 남녀평등, 여성 해방 이런것에 영향을 줬는데 지금은 세상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죠. 남녀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이 있고... 구별까지는 괜찮지만 교회 내에서 그건(차별) 고쳐야 돼요.
마지막으로 기독일보 독자들에게 책 한권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박 사령관은 목회를 할때는 의무감에서라도 책을 많이 읽으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은 행정적 업무가 많은 탓에 정말 책읽을 시간 내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즐겨 외우는 성구는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자신있게 말했다.
"항상 맴도는 성구 하나가 있는데 사역을 하면서 늘 힘이 됐던 성경구절이 하나 있어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민수기 11:23)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달라고 떼 쓰니까 그래 코에서 냄새 나도록 고기 먹여주겠다 해도, 뭘 갔다가 소를 잡겠느냐 불평을 하니까 코가 비틀어지도록 먹여주겠다 하시면서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모세가 되묻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건데 왜 의심하느냐?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인 성경 구절 같은데 제가 교회 사역을 하면서 굉장히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 성경말씀이 힘을 줬고 희망을 줬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고 저는 이 말씀이 힘이 되는 말씀이고, 제 사역에 승리를 가져다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을 마음 속에 담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박 사령관은 기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지난 2008년 제작한 '한국구세군100주년 기념 우표첩'을 선물했다. 거기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고 쓴 문구가 구세군의 사역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 같아 인상 깊었다.
※ 박종덕 사령관은...
인천 부평 태생인 박 사령관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구세군 병사(성도)가 됐다. 군 제대 후 4개월간 관세청 공무원으로 세관에서 잠시 근무했지만, 이를 그만두고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부평고등공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동료교사 지금의 윤은숙 사모와 결혼했다.
1977년 부부가 함께 구세군사관학교에서 '그리스도의 동역자 학기'를 졸업하고, 첫 임지로 충남 예산 농촌 오지인 '손지리영문'을 시작으로 이리와 상계, 과천, 서울제일 영문(교회) 등의 담임사관을 거쳤다. 2010년 서기장관에 올랐고 이번에 부장 승진과 함께 사령관에 임명됐다. 구세군의 관례에 따라 사모 윤은숙 부장은 여성사업총재로 임명돼 구세군 발전을 위해 박 사령관과 동역하고 있다.
박 사령관과 윤 여성사업총재 부부 슬하에는 두 아들이 있다. 첫째(36)는 구세군사관으로 경북 청송영문(교회) 담임사관으로 목회중이이며, 둘째(34)는 IT전문가로 국내 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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