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덕수궁 구세군제일영문에서 한국구세군을 이끌 제24대 사령관에 박종덕(63) 부장이 취임했다. 박 신임 사령관은 이날 설교를 통해 구원 사역에 집중할 것과 성결을 강조하며 참된 구세군(Salvation Army, 救世軍)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했다.

기독일보는 지난 18일 충정로 구세군대한본영 6층 사령관실에서 박종덕 사령관을 만나 구세군 발전을 위해 그가 그리는 청사진과 함께 그의 신앙과 구세군의 비전을 들여다 봤다. 본지는 이를 두 차례 나눠 자세히 게재한다. <편집자 주>

18일 충정로 구세군 사령관실에서 만난 박종덕 사령관은 첫 인상이 매우 온화했다. 지인들은 박 사령관을 '겸손'과 '청렴'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채경도 기자

- 먼저, 취임 소감은?

제 자신을 돌아볼 때 딱히 이 자리가 어울리거나 또 될만하기 때문에 됐다고는 생각 안하고요. 부족한 사람인데 이렇게 중임을 맡겨 주셔서 많이 염려하고 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죠.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기를... 구세군 내적으로나 교계 바깥으로나 대사회적인 일도 하고 있으니까 모든 일들에서 허물이 드러나지 않게 기도해요. 허물 드러내는 것도 우리 주님 욕 되는 것이니 기도하고 있고요. 중임을 맡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까 세우시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맡기심에 적극적으로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 구세군의 역할이 보이지 않게 많은데 저평가돼 있는 것은 아닌가요?

 "교계 역할에서는 저희가 딱히 어떻게 무슨... (웃음) 군복은 아주 특색이 있는데 교계 역할에서는 우리가 정말 특색 있다고 내세울게 있다면 뭐가 있겠어요? 저는 전체적으로 모든 교단들과 잘 중화해서 연합사업에 잘 참여해주고, 다른 교단들이 우리 때문에 때문에 격려 받고 잘 참여할 수 있게 그런 면에서 기여한다면 할까, 교계 차원에서 우리가 뚜렷하게 주도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 업무가 바쁘고 그러다 보니 우리를 필요로 하는 연합사업에는 적극 참여를 하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도 충성하고 있고 그 외에도 홈리스(노숙자) 대책이라든지 교계에서 관심을 갖고 벌이는 사업들에는 저희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죠."

"한국종교사회복지협회 창립에도 기여를 했구요. 다른 개신교 쪽에서 많이 관심을 안 쓰는 에이즈나 알코올중독자 재생하는 프로그램이나 그런데 큰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선도적으로 개발해나가고 있습니다."

"호흡을 맞춰서 (일)하는 것은 우리가 잘합니다. 지방에서도 목회하면서 들은 얘기가 '구세군이 들어와야 연합사업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언제든 중도적인 입장에서 진보 쪽도 보수 쪽도 편을 드는 것이 아니고 하니 구세군이 들어가야 구색이 맞는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너무 중도적인 입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색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모습은 적습니다. 지역에서 기독교연합회장을 한다든가 교회연합회장을 한다는 그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되어지고 있지만..."

- 구세군의 당면과제로 취임사에서 구원사역(선교)과 성결(聖潔)을 강조하셨는데...

 "한국 개신교회가 계속 침체되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잖아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교회가 자꾸 대사회적으로 신뢰를 잃는 부분도 있고 기독교인이면서도 교회 안에 생리나 내용을 파악하며 실망되는 내용도 있고 해서 교회를 떠나거나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속하는 일들이 점점 둔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생각할 때 교회가 점차 구원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막대한 재정을 써가면서 일을 할때는 많은 생명에게 빛을 주고 생명을 주고 삶의 자유와 행복을 부여해줘야 되는데… 돈을 쓰는 걸로 하면 옛날에 비교하겠어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경비를 쓰거든요. 교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데는 둔화되고 숫자가 감소된다는 얘기는 구원의 능력을 잃은 거고 영향력을 잃은 것입니다."

"구세군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교단)이기 때문에 큰 교회나 전체 한국교회 영향을 안받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내려간다 쇠퇴한다 하는 그런 거는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청년부는 조금 감소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 볼 때 구원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고 우리도 잃어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일에 좀더 집중하고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능력이 드러나려면 '밑바탕'이 중요합니다. 근거(根據)가 중요한데 근거가 흔들려버리면 다 잃는 것입니다. 신뢰를 잃는 것, 경건성 거룩성을 잃고 성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놓고도 본인이, 교회가 깨끗하고 투명하고 거룩하지 못하다 평을 받으면 해놓은 좋은 것을 다 잃는 거고 욕 먹는거거든요. 구세군이 어떤 일을 할 때 성결하지 않으면 욕이 되는거에요. 군복 입고 다니면 '아 저 친구들' 하면서 욕을 먹어요. 구원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 성결한 군대로 회복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따로 갈 수 없습니다. 둘이 같이 있어요. 성결한 구세군으로 서지 못하면 구원의 능력을 회복할 수 없고 대사회적으로 어떤 면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교회를 볼때는 기대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와 좀 다르게 살아줘라' 그것입니다. 우리같이 살지 말고, 우리는 죄 짓고 윤리적으로 좀 벗어나고 못된 부분이 있어도 '너네만은 그렇게 하지 말고 스승이 되어주고 거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크리스천, 종교지도자들이 그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능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거고 그래서 교회가 뭔소리를 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사회도 교회가 하는 일을 좀 이렇게 겉돌듯이 눈에 뵈는 것만 보지 말고 좀더 속을 들여다보고 폭넓게 보면 말 듣는 것보다 수백배 수천배 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빛되는 일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그런 건 안보이나 봐요. 속상하게... 뉴스나 그런 것 봐도 부정적인 일이 얼른 들어오니까요. 그런게 안타깝죠."

1시간 3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구세군 박종덕 사령관은 구세군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채경도 기자

- 세계구세군에서 한국구세군의 위상은 어떠합니까. 영국 구세군국제본부나 해외 다른 지역의 구세군과의 연대나 연계사업들은 활발한가요?

 "구세군은 아시겠지만 영국에서 시작됐고 영국이 세계강국으로 세계 대부분의 식민지역을 통치하면서 구세군도 같이 나갔어요. 미국이 강국이 되기 전에는 영국 중심으로 자유 우방들이 문화교류를 하고 교회도 다 그렇게 됐습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장로교도 영국에서 왔고, 침례교 • 구세군 • 감리교 다 영국 계통입니다. 근본이 다 영국입니다. 선교는 미국 쪽에서 미선교사들 통해서 되어졌다 해도 근본은 영국입니다. 구세군도 강한 나라들이 다 서구쪽이에요. 영국 중심해서 영어권 나라들인 캐나다, 미국, 호주 등이나 영국과 관련된 영어를 쓰는 나라나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아프리카 쪽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영국 지배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구세군이 강한 형편입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가까운 북구라파 쪽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이런 나라들이 구세군이 좀 강한 나라였어요. 1908년 10월 1일 구세군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노르웨이,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이런 나라들에서 들어와서 일을 하고 갔습니다."

"근래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이외의 지역들에 구세군이 부흥하는 지역들이 생겼죠. 아프리카, 아시아, 한국, 미얀마 몇몇 나라들 통해서 구세군이 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부흥하고... 나름대로 다른 장감성이나 교회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잘 돼가는 거에요. 지금은 세계 구세군 안에서 볼 때 한국 구세군 꽤 잘 하고 있고 많이 성장했고 그런 견지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국력도 있고요. 한국 구세군도 자립하는 구세군이 됐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기여하는 바들이 자꾸 늘어가고 있죠."

"전에는 한국 구세군 사관님들이 해외 나가서 사역을 하는 것이 그저 한두분 정도였어요. 제가 처음에 사관이 됐을때는... 지금은 많이들 나가 계세요. 미국 쪽에... 호주나 뉴질랜드도 한분씩 나가 있고 필리핀, 영국 몇몇 나라들에 사관들이 나가 있고요. 영어를 좀 잘 할 수 있는 인력을 20여년 전부터 양성을 해와서 국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문이 많이 열리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들만도 영어를 잘 못해서 국제적으로 아쉬워했습니다. 한국 사관님들 설교도 열정적으로 하고 영성은 깊은데 세계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니 아쉬웠는데 영어 잘 하는 사관들이 확보되고 있어 앞으로는 더 참여하고 기여할 수 기회가 열릴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일찍부터 준비가 되어오고 있고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군은 개인적 차원에서 선교를 하는 것 보다도 전세계 126개국이 그냥 하나거든요. 원 샐베이션 아미(One Salvation Army)입니다. 하나기 때문에 다른 교단에서 선교사 보낼 때 미국쪽이나 필리핀에 가도 선교사 호칭하지만 사실 우리는 선교사 관념이 아니라 그쪽에 있는 구세군에 파견간 것입니다. 같은 가족이죠. 거기에 선교를 갔다 그 개념보다... 그 구세군에 파견되어서 일시적으로 속해서 사역을 하는 그런 입장이죠. 어떻게 보면 지원을 가는 그런 입장입니다. 교회에서 미얀마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는데 우린 못가요. 거기를 관할하는 구세군이 있는 거니까요. 중국도 우리가 막 가서 일을 못해요. 홍콩이 중국 대륙에 선교할 수 있는 관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라오스,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각국 구세군이 관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종덕 사령관은 '영혼구원의 사역'이야 말로 구세군이 가장 집중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채경도 기자

 "다만 캄보디아, 몽골에 한국 구세군이 선교를 해서 두개 나라에 구세군 사업은 한국 구세군에 소속이 돼있습니다. 거기도 처음에 승인받지 않고 들어가서 일을 벌여버렸어요. 행정적으로 한참 조정해서 한국 구세군이 들어가서 우리 이름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거죠. 베트남, 라오스는 싱가폴 구세군 쪽에서 관할권을 가지고 있어요. 베트남 가고 싶다고 해서 막 가고 그러지는 못해요. 세계가 5개 지역(존)으로 분류가 돼요. 우리가 남태평양 아시아 존에 속했기 때문에 거기에 행정적으로 연락을 해서 그쪽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승인을 받든지 거기를 관할권 두고 있는 구세군과 협력해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가서 전에도 현지 사업을 하는 사장님을 만났는데 "선교사 들어와서 하는데 하는 말이많은 사람들이 놀고 먹어요. 선교비만 먹고, 하는 일 없이…." 현지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 그러더라구. 대사관 쪽에서도 그런 얘기 하고. 개교회주의로 막 하니까 어떤 분들은 꾸준히 오래 체류하면서 좋은 성과를 얻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선교 지역을 흐려놓는 것도 많이 생깁니다."

"힘든 이유가 행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 우리가 부담이 됩니다. 구세군 선교는 반드시 정상적(합법적)으로 합니다. 개교회적으로 하면 니가 알아서 하고 말일인데 저희는 반드시 정상적으로 합니다. 몽골에 선교한다고 가서 일 벌리는 것 아니고 정부의 NGO 단체로 정확하게 등록을 하고 정부의 인정을 받아서 법 테두리 안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 정부의 정식 승인을 받고 모든 일을 해나갑니다. 조금 더디지만 정상적으로 갑니다. 그게 아니면 국제 본영에서 승인을 안해줍니다. 국제본영에서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몽골 같은 데는 지금 사관님들이 남녀사관 4분 들어가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 코이카, 공동모금회와 협력해서 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기아타이거즈와 야구 교실도 하구요. 거기는 야구를 몰라요. 말 타는 건 아는데... 또 방과후 교실, 유치원, 울란바토르에서는 무료급식도 이뤄지고 있어요. 또 투아이막라고 하는 울란바토르에서 한시간 떨어진 곳의 요지를 일만평 정부로부터 기부 받았습니다. 거기에 노인복지를 위한 무료급식을 위한 시설을 지었고 그 사업을 진행해나가고 있습니다."

-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한국구세군이 할 일과, 이를 위한 청사진이 있다면.

"한국구세군은 1928년부터 자선냄비를 해왔습니다. 하게 된 동기를 보면 당시 굉장히 가물었고 아주 늦은 홍수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 사람들이 많았대요. 그 때 미국에서 시작한 자선냄비를 '우리가 해야겠다'고 해서 그해 본부로부터 승인 받아서 전국에 십여개소에 설치해서 모금을 해서 그때 돈으로 900원 정도 모금을 해서 140~150명 정도 매일같이 무료급식을 했어요. 일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이지만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자선냄비를 통해서 피폐하고 굶주리는 민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거죠."

 "지금 자선냄비 (모금) 액수가 많은 건 아니죠. 사람들은 많다고 하는데 저는 많다고 생각 안합니다. 다른 복음단체는 얼마나 많이 모금하는데…역사에 비춰봤을때는 조금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의미는 있습니다. 모금액에 초점을 두고 있는게 아니라 자선냄비가 갖는 상징성 대사회적 이미지를 중요하게 봐요. 한 15년 정도 있으면 자선냄비 100년 되는데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의 마음 속에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누는 것으로 국민들 마음에 각인이 돼 있습니다. '자선냄비'는 대사회적인 교육적 차원에서의 '국민운동'입니다. 그런 쪽에서 자선냄비를 보고 있지 액수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실무진 쪽에서느 더 모금해야 더 일을 하니까 교단쪽에서 더 모금하려고 하지만요." (웃음)

"그걸 우리가 자선냄비를 모금액을 통해서 그때 1928년대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했어요. 자선냄비 자금을 통해서 구세군맨들을 먹여 살리는게 아니라 국민들을 먹이고 입히고 치료를 하고 돕는건데 그걸 또 다르게 보는 분들도 있어요. 외에도 구세군이 많은 사업을 하죠. 복지사업 노인사업부터 시작해서 알코올, 마약중독자 재활사업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에서 결손아동들, 옛날말로 하면 고아원인데 지금은 고아는 없습니다. 일시에 부모를 잃는 경우는 없죠. 가족이 파탄나서 오도가도 못하는 아이들, 갑자기 사업에 망했다거나 자녀를 돌볼 수 없어서 맡기는 아이들이죠. 상황이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 돌보는 사업, 학교 갔다 와서 부모가 직장 나가서 거리에 떠돌수밖에 없는 아이들 문제가 심각하거든요. 방과후 아동교실이나 청소년 문제 그런 사업들, 미혼모 문제, 특히 미혼모 사업은 구세군이 한국 최초였습니다. 최초로 미혼모를 위한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매매춘에 관해 청소년들을 돌보고 재활시키는 사업도 있고, 현재 양로원도 들어가 있고 요양원도 들어가 있고... 한국정부나 지자체가 들어가있는 복지 사업 모든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항상 문제가 좀더 모금이 많아서 지원을 하고 사업을 좀더 선진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욕심인데 모금을 열심히 하는데, 기독일보에 기사 나가고 기독교인들이 모금 큼직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세군의 상징인 '자선냄비'와 함께 서 있는 박종덕 사령관. ©채경도 기자

■ 구세군,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빈자(貧者)에 대한 보살핌' 두 바퀴가 같이 가는 것

"요즘 복지사업면에서 갈등으로 올라오는 문제가 뭐냐면 구세군은 복지 사업의 마인드가 정부나 지자체 복지사업의 마인드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시작될 때부터 다른 교회와 태생이 다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빈자에 대한 보살핌' 이 두 바퀴가 같이 가는 겁니다. 양자(兩者)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진 신학적인 것과 전통, 가치는 경제사회학적으로 사회적인 약자나 빈자를 섬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복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궁극적인 복지는 마음이 변화받고 그 영혼이 구원 받아서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질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얘기죠. 의식주 문제 해결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목회를 하면서 부닥치는 문제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부를 누리면서도 길거리에 가난한 자보다 더 가난한 마음 가진 자가 있다는 거에요. 가난의 척도를 경제지표로만 따질 이유는 없습니다. 불행과 행복의 차이는 갖고 못가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정신의 문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궁극적인 복지는 이뤄질 수 없어요. 구세군은 그거 하겠다는 건데 오늘날 정부나 지자체의 복지 마인드는 '그거 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네 종교얘기 꺼내지 말라', '간판도 달지 말어' 제약을 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많은 복지 현장에서 갈등하는 것이 그거에요."

"거기에 파송되서 그 일을 운영하는 것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건데 '너네 복음 얘기 꺼내지도 말고 종교 얘기 하지 말고 색깔도 꺼내놓지 말라'고 하니까 갈등 요인이 됩니다. 이 문제가 구세군이 풀어가야 될 숙제고 사회복지학계뿐만 아니라 교회가 풀어야 될 숙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교회들이 많은 부분에서 이웃을 섬기는 문제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서 교단적으로 개교회별로 능력을 가진 교회들이 대거 참여해서 복지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은 복지도 교계 속에서마저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고 봐야돼요. 서로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가 복음을 바탕으로 해서 할 수 없는 복지라면 어떻게 해야돼냐 하는 문제는 구세군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같이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적으로 다른 종교인이 기독교에서 하는 복지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고, 기독교인도 불교에서 하는데 가서 복지혜택을 받을 수 밖에 없으니 세세한 갈등들이 나올 수 있어 정부에서도 종교 색깔 꺼내지 말라 할 수 있지만, 교계 입장에서는 이게 고민이고 다 같이 풀어야 될 숙제입니다. 정부의 돈을 쓰는데 국가의 돈,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서 쓰는 부분이 많으니까 간섭 받아야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거죠. 돈을 공짜로 받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거기에 자꾸 메이게 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下편에 계속>

※ 박종덕 사령관은…
인천 부평 태생인 박 사령관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구세군 병사(성도)가 됐다. 군 제대 후 4개월간 관세청 공무원으로 세관에서 잠시 근무했지만, 이를 그만두고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부평고등공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동료교사 지금의 윤은숙 사모와 결혼했다.

1977년 부부가 함께 구세군사관학교에서 '그리스도의 동역자 학기'를 졸업하고, 첫 임지로 충남 예산 농촌 오지인 '손지리영문'을 시작으로 이리와 상계, 과천, 서울제일 영문(교회) 등의 담임사관을 거쳤다. 2010년 서기장관에 올랐고 이번에 부장 승진과 함께 사령관에 임명됐다. 구세군의 관례에 따라 사모 윤은숙 부장은 여성사업총재로 임명돼 구세군 발전을 위해 박 사령관과 동역하고 있다.

박 사령관과 윤 여성사업총재 부부 슬하에는 두 아들이 있다. 첫째(36)는 구세군사관으로 경북 청송영문(교회) 담임사관으로 목회중이이며, 둘째(34)는 IT전문가로 국내 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덕사령관 #구세군사령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