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린도전서 8장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 바울은 사랑과 지식을 비교하면서 먼저 지식의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본 절에서의 ‘지식’(그노시스)이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시사 하지만, 이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대로 알지 못하다는 것이다. 겨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 불과한 정도로 아는 것뿐이다.(요일 2:4).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아는 것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호 6:3). 그러나 고린도의 지식 있는 자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짐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愚)를 범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 지식을 당면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마땅한 지식' 곧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과 덕을 세워주는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구절은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해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아는 것 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과 물리에 대해서, 사물과 사건에 대해서, 영과 육(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과 인인관계에 대해서, 진리와 진리의 깨달음에 대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내가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또한 온전히 알대로 다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 잠언 16장 25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곧 ‘사람의보기에’는 그 길에 대한 판단 기준이 세속적인 단견(短見)과 편협하고 왜곡된 인간의 생각이라는 말이다(롬 1:28;딤전 4:2). 따라서 절대적인 판단의 준거가 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판단하여 방종하게 행하는 자의 결국은 그 행위의 가증함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심판적 보응을 받게 되리란 의미이다(5:5).
이 구절은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지만, 그것이 때로는 사망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의 아비인 마귀의 영을 제 주관의 마음이 받으면, 유혹을 받은 자기의 판단과 비판이 모두 거짓되거나 반 거짓말이 되는 것인 줄 본인도 모르고, 그 말을 듣고 배운 사람도 그 말만 알기 때문에 스스로 속고 있어도 자신이 속는 것인 줄 모릅니다. 오직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8. 전도서 1장 8절: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만물의 피곤함’이란 ‘모든 만물이 무상하고 헛된 수고로 인해 곤비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는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롬 8:22)이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 만물이 무상하고 헛됨으로 인해 그것을 보고 듣는 자가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피곤하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들어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9. 예레미야 10장 23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이는 인간의 운명이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통제 하에 있다는 내용이다(Nicholson). 유다의 형편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예레미야의 관심은 계속해서 자기 동포의 운명에 쏠려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그의 탄원의 요지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할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이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연약하여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죄악에 빠지기 쉬운 도덕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탄원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친다한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임할 재앙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도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과 판단을 의지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10. 야고보서 4장 13-14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으니라.”
13절의 ‘말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곤테스’는 현재 분사로 현재 많은 사람들이 허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Burdick). 당시 유대인 중개업자나 상인들의 생각과 생활 관념과 태도를 꼬집어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어리석고 고집스런 교만을 지적한다.
14절 본문은 잠27:1을 반영한 것으로 앞 절에서 언급된 육신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어리석은 이유를 나타낸다. 그들은 먼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육신적인 목적을 위해 계획하고 추구하지만 실상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들이다. 야고보는 이렇듯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한 채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먼 자들의 삶의 자세를 경고한다(사 56:12;암 6:3;눅 12:19)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는 ‘너희 생명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의미이다. ‘안개’의 헬라어 ‘아트미스’는 ‘증기’ 혹은 ‘호흡’을 의미하지만 본 절에서의 의미는 ‘생의 무가치성과 유한성’이다(Adamson).
본문은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점을 들어 헛된 인간의 욕망에 집착하여 확신하는 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위가 헛된 것임을 암시한다(욥7:7; 13:25; 14:2, 사40:6, 7).
이 구절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무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지만, 우리는 내일 일조차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C. 결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겸손히 행하라
로마서 12장 16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서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단일지식으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하나님의 지식보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라.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자율지식으로 교만하면 스스로 속는 일이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이는 남들보다 뛰어나길 원하고 우월 의식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중(珍重)하게 대하고 온순함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Calvin). 그렇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오만함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 구절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기 쉽지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혜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하고 무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D. 적용: 겸손과 순종의 삶
① 겸손한 마음: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② 하나님의 지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③ 순종하는 삶: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④ 타인 존중: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십시오.
⑤ 하나님 의지: 자신의 계획과 판단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러한 겸손과 순종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경험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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