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거리에는 ‘대통령 탄핵기각’과 ‘탄핵 찬성’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엄중한 상황에 대해서 한국교회의 대표적 목사님들의 발언이 뜻 있는 성도들과 시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주고 있다. 즉 성경 구절 ‘신명기 5:32’ ‘여호수아 23:6’을 들먹이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했으니, 목회자가 세상 정치에 대해서는 ‘중도’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야말로 매우 성경적이라고 우기고 있다. 하기야 그분들은 지금까지 정부에서 초대하면 제일 먼저 달려갔고, 교회를 찾아온 여야 정치인들이 거룩한 예배 시간에 정치적 발언을 하도록 허락했었다.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이 엄중한 시간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좀 치사하다고 본다. 이 성경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율법의 길로만 똑바로 걸어가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인간의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 말씀을 오늘의 목회자들은 ‘중도’ ‘중립’이라는 괴상한 논리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겁하기 짝이 없다. 이 말씀(수23:6)은 ‘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정도’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가르침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오직 너희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간 것은 악으로 쫓아 나느니라’(마5:37)고 했다. 즉 ‘헛된 맹세를 하지 말고,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분명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했다. 백성들이 타락하고 곁길로 가고 정치 지도자들이 부정과 부패를 일삼을 때,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은 생명 걸고 불의와 불법을 지적하고 엄중히 책망하였다.
오늘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제사장적 사명은 잘 감당하면서도 선지자적 사명은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을 때,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잠자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평신도들은 깨어있는데, 오히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잠자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도·중립을 표방하고 숨어버린 이유는 누가 봐도 짐작이 간다. 사실 선교 140주년째 되는 한국교회는 환난, 시험, 핍박도 있었으나 이만큼 성장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도날드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이론’에 매몰되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교회 성장이론을 근거로 해서 강단에서는 진리를 증거 하는 것보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프로이드적인 ‘심리학’과 미국의 ‘마케팅 이론’을 교회 성장에 접목(接木)시켜 왔었다.
한국의 큰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안전한 지대는 ‘중도’ ‘중립’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만에 하나 어느 한쪽에 기울어져 메시지를 증거하는 날에는 퇴출되고, 평생 일구어 놓은 꿈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교회처럼 출신도, 지방색도 다르고, 성향이 다른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분명히 “예, 예,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에 있는 데로 “나팔이 분명치 못하면 누가 전쟁을 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인본주의적, 심리적, 마케팅 전략에 익숙한 오늘의 교회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대로 복음의 내용을 가감 없이 증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만이 후진국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중에는 훌륭한 지도자들도 많지만, 권모술수의 전문가들, 백수, 건달, 무직자, 범법자들의 모임이라는 오명도 없지 않다. 인도의 네루 수상은 “정치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라고 했고, A. 카이퍼 수상은 “정부는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피눈물을 짜내고 있고, 울분을 터뜨리게 하고 있다. 정치나 정부를 나무라기 전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을 잡고 교회개혁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루터의 교회개혁이 힘 있는 독일 공화국을 만들었고, 칼빈의 교회개혁이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었다. 인간은 늘 부패하기에 부패한 사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이 먼저 변화될 때 사회도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한국교회의 지도 목사님들은 더 이상 ‘중도’ ‘중립’이라는 애매한 벽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Yes, Yes, No, No를 분명히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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