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누가 9:58)

우리는 철저히 제자직을 수행할 때 쉬라는 유혹을 받게 된다. 우리는 미해결로 그것을 남겨 두게 되고 정확히 하지 않게 되며 엄밀하지도 성실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의무로 알고 있는 일을 연기하라는 유혹을 받게 되어 어떤 다른 때로 연기하게 된다. 우리가 걱정과 어려움을 피하여 어떤 일을 완수함으로 어떤 위치까지 올랐을 때 우리는 신앙적인 것을 생각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의해서 속게 됨으로 모든 시간에 속게 된다.

무한히 고독한 시인이 쓴 무한히 고독한 실존자(實存者)의 이야기. 이것이 릴케(RainerMaria Rilke, 1875-1926)의 문제 작품 <말테의 수기(手記)>(Die Aufzeichungen des Malte LauridsBrige, 1910)이다.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이 도시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서두(序頭)이다. 이 소설은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라는 이름의 젊은 덴마크 시인의 내면(內面)을 기록한 수기(手記)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테는 죽음에 관하여 생각한다. 이제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는 故鄕(고향)을 생각할 때면, 전에는 틀림없이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누구나 과일 속에 씨가 있는 것처럼 인간은 죽음이 자기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1부 후반부터 말테의 유년시대 추억이 펼쳐진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여동생의 죽음과 강아지 이야기. 말테로 하여금 시의 세계에 이르게 해준 올드 미스 아베로네.ㅡ말테의 파리에서 현재 느끼는 고독은 이미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제2부는 말테가 독서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랑하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벨라르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엘로이즈, 그리스 여류시인 사포 등의 사랑은 고독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여 고독을 지양(止揚)하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대상(對象)을 초월한 숭고(崇高)한 사랑인 것이다.

이어서 고독자와 신(神)과의 관계에 관한 사색이 계속된다.ㅡ”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오직 다 버리고 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잦아드는 일이 없는 기름으로써 빛을 내는 등불인것이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망하는 것이며, 사랑을 한다는 것은 영원의 지속(持續)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는 신(神)과 인간의 중재자(仲裁者) 그리스도는 하나의 경계물(警戒物)이 되고 만다. 때문에 성서 속의 비유 ‘집을 나간 방탕한 아들’은, 말테에게 타인(他人)의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보다 큰 사랑, 참된 신(神)의 사랑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말테는 ‘집을 나간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신(神)과 사랑과 고독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직 한 분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 “오직한 분”인 신(神)은 아직도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

젊은 시인 말테의 내면(內面) 곧 영혼을 파헤친 이 수기(手記) 형식의 소설은 신(神)을 탐구하는 글이다. 현대인의 비참함을 운명으로 여기면서도 절망과 고독에 빠지지 않고, 고독을 씹으며 새로운 길을 향하여 나아가는 결의에 차 있는 이 소설은, 릴케의 장시(長詩) ‘두이노의 비가(悲歌)’를 산문화(散文化)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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