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사랑과 복과 저주를 애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명기 30:19)
택하라는 이 말은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신 상황에서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은혜롭게도 이미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에 대해 응답하도록 그들을 초청하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삶을 향해 “기대어” 살아감으로 이미 주어진 생명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초청받은 것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 황제 ‘배교자(背敎者)’ 율리아누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인정하게 되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 메레즈코프스키(Dmitry SergeevichMerejkovsky, 1865-1941)의 소설 <신(神)들의 죽음>(Smertibogov, 1896)이다.
‘밀라노 칙령(勅令)’으로 기독교를 공인(公認)한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는 율리아누스의 사촌 형이었다. 왕권(王權) 다툼으로 아버지가 콘스탄티누스에게 살해당하고, 율리아누스는 가족과 함께 감금(監禁) 생활을 하였다. 그 때문에 콘스탄티누스와 그가 적극 후원하는 기독교에 대한 증오감(憎惡感)을 품게 되었다.
실의(失意)에 빠진 율리아누스에게 접근하여 서로 사랑하게 된 아름다운 여성이, 그리스 정신을 높이 사는 알시노에였다. 그녀는 율리아누스에게 “당나귀의 가죽을 뒤집어 쓴 사자가 되어 복수하라” 하고 말하였다. 율리아누스는 그 말에 따라 마음으로는 제우스와 아폴론 등 그리스의 신들에게 흠뻑 빠져들면서, 겉으로는 가장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운명(殞命)하고, 그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것은 율리아누스였다. 사자는 당나귀의 가죽을 벗고 공공연히 기독교에 도전(挑戰)하였다. 율리아누스의 머리 위에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가 새겨진 거룩한 깃발 대신 아폴로 상(像)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게 된 것이다.
로마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가 맨 처음 한 일은 폐허가 된 올림포스 12신(神)의 신전(神殿)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기독교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미 깊게 뿌리 박힌 이 새 종교를 시대에 역행하여 타파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율리아누스는 자기 자신의 영광과 신들의 위신(威信)을 걸고 페르시아 대전쟁을 결의하였다. 때마침 아폴로 신전이 불타버려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율리아누스는 굴복하지 않았다.
전세(戰勢)가 불리해지자 그는 “신들은 망하였다. 아니,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다.” 하며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중상(重傷)을 입었다. 율리아누스는 숨을 거두며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리 사람아 네가 이겼다. 지금은 갈릴리 사람으로 하여금 이기게 하라. 그러나 후일(後日)에는 우리들이 이기게 된다. 그 때에는 신들과 동등한 것, 태양처럼 영원히 미소 짓는 마음이 이 세상을 반드시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 리 없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 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