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대표적 교회사학자인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명예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 전 회장)에 따르면,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및 민주화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매우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일보는 14일 박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지금의 탄핵정국을 조망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 그 내용을 요약·정리했다.
◆ 대한민국의 건국과 기독교
“우선 대한민국은 조선이 아니다. 조선은 중국을 천자국(天子國)으로 섬긴 제후국이었다. 쉽게 말해 중국은 아버지의 나라, 조선은 아들의 나라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근대적 의미의 독립국가다.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 아니다.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우니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다르다. 인민민주주의에서 인민은 노동자와 농민이다. 부르주아(자본가 계급)나 종교인 등은 반동분자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특정한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나라다.
조선은 유교를 정치제도로 받아들였고, 북한은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서양의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만들어진 민주공화제의 나라다. 이 민주공화제는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가져온 정치제도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이라고 생각한다.”
◆ 기독교와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식 아래서 가능하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 천자에게 있다고 믿는 중화질서에서는 이런 의식이 나타나기 어렵다. 반면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다. 즉, 중국의 천자가 하늘의 아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누구나 하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실로 혁명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다.”
◆ 대한민국 건국의 3단계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 데는 세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었다. 하나는 3.1운동, 두 번째는 1945년과 1948년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탄생, 그리고 6.25 전쟁의 시련이다. 3.1운동 때는 대한민국의 씨를 부렸고, 해방 이후 약 3년 간 대한민국 탄생을 위한 해산의 고통이 었었다. 그런 신생 대한민국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의 시련을 겪은 것이다.
이 고비고비마다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3.1운동은 해외에서 먼저 일어났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이후 국내에서 기독교와 천도교가 함께 이 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을 지나 임시정부를 만들 때도 기독교인들이 주역이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3.1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3.1운동의 핵심 정신은 자유와 독립이다. 그런데 자유는 동양사회에서 나온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에게 천부적 인권이 있다는 서구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다. 독립도 근대적 의미의 국제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의 사상과 인적 동원에서 나온 것이 3.1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탄생기인 1945년에서 1948년. 이승만 박사가 1948년 정부 수립 때 이렇게 말했다. ‘1945년은 일본에서 해방된 날이고 1948년의 오늘은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이다.’ 즉, 1945년 이후 해산의 고통을 겪다가 1948년에 태어난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크게 두 세력이 싸우고 있었다. 공산주의 세력과 자유민주주의 세력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지 잘 몰랐다. 그 가운데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했던 이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 이승만, 김구, 김규식 모두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북한에서 공산주의 박해를 피해 내려온, 월남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한경직 목사, 이윤영 목사 같은 이들이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왔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남한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투철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제헌국회는 국회의원이었던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하나님과 민족의 선영 앞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선서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다.
끝으로 6.25 전쟁에서 온갖 노력을 다한 이들도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씨앗, 탄생, 시련이라는 세 단계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3.1절과 광복절, 그리고 6.25라는 세 절기를 다 지킨다. 기독교가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싸웠던 때가 바로 그 날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유교가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은 기독교가 만든 것이다.”
◆ 대한민국 경제 성장과 기독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주요 계층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가장 하층인 상(商)이었다. 기독교 선교는 항상 무역과 함께 갔다. 토마스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타고왔던 배도 상선이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장사하러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전통적 유교사회에서는 물질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런데 해방 이후 한국교회에서 물질을 긍증적으로 보는 새로운 메시지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당시 부흥사들의 그것이었다. 조 목사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던 한국인들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인생관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 산업화의 밑바탕을 이루었다고 본다.
또한 기독교는 산업화의 현상 중 하나인 도시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쾌락과 음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했다. 농촌에 있다 도시로 온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를 받아 술과 도박 등을 멀리했다. 만약 교회가 부흥하지 않았다면, 유흥과 오락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졌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도 어려웠을 지 모른다.”
◆ 대한민국 민주화와 기독교
“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은 통치자가 피통치자의 동의를 받아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았던 곳이 바로 교회였다. 당회나 제직회, 교인총회를 통해 신자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가 해방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단체는 교회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다. 즉 교회는 우리 민족에게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해준 일종의 학교였다고 볼 수 있다. 1960~7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중심도 기독교였다.”
◆ 민주화 운동의 이면
“그러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를 위한 위한 민주화 운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위 인민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여기에 반발했다. 기독교인들 중에 그 대표적 인물이 김진홍 목사와 서경석 목사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혼란은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혼재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드러내놓고 인민민주주의를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심에서 그것을 지향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과거 촛불집회에서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다. 인민공화국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를 인민의 나라, 곧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세력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헌법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들은 1948년 만들어진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 땅의 기독교가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 반공과 기독교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 기독교인들이다. 해방 후 한반도에 있었던 약 30만 명의 기독교 신자들 중 20만은 북한에, 10만은 남한에 있었다.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을 공산주의라고 생각했다. 북한에서 공산주의 박해를 피해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에 대한 분명한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진 후 미군이 철수했다. 여기에 불안을 느낀 기독교인들은 6.25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 6월 서울운동장에 모여 구국기도회를 했다. 1950년에도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나라를 위한 기도회가 많이 열렸다.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남한에 왔는데, 남한마저 공산화가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에서였다.
이 때부터 기독교인들은 나라가 혼란할 때마다, ‘혹시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내려오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을 했다. 그 절정이 1970년대였다. 바로 월남이 공산주의에 패망했던 시기였다. 그것을 본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공산화 가능성을 염려했다.
그래서 모인 것이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엑스플로 74대회 같은 것들이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당시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를 꺼냈던 미국 닉슨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그를 초청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1970년대 기독교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된 절박함 같은 것들이 모여 대형집회와 교회 부흥을 이루게 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다.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공산주의에 쫓겨 이 나라로 왔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한미동맹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흔히 ‘태극기 집회’라고 하는 것과, 최근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들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는 우리의 힘만으론 지킬 수 없다. 자유 세계와 연대해야 한다.”
◆ 지금의 탄핵정국과 기독교
“그리고 미국 이외에, 우리와 가까운 동아시아에서 과연 우리가 연대할 수 있는 자유 세력이 어디인가. 중국과 러시아는 아니다. 바로 일본이다. 윤석을 대통령이 일본과 연대한 것은 매우 잘한 것이다. 자유를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기 원한다면 자유 세계와 연대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일본과 가까이 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1차 탄핵소추안은 이것을 탄핵 사유 중 하나로 삼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잘한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 한 것이다. 현재 윤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하는 세력들 중에는 이 자유민주주의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탄핵정국의 본질은 단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것이다.
과거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다 21세기 중반부터 우리는 서양의 자유 세계와 손을 잡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있지만 정치제도와 문화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자유 세계에 계속 머물러서 이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부상하는 중국과 손을 잡고 과거 조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에 의존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기로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전자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이 정말 바른 선택을 해서 이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2030
“2030세대가 탄핵 반대 집회에 많이 참여하는 이유는 자유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본다. 자유롭게 살고 말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우리나라가 공산·전체주의로 가서 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냐’ 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동기인 것이다.
모든 평등을 강조하는 국가는 전체주의로 가기 쉽다는 말이 있다.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고, 그러자면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개인의 자유는 점점 약해지고 그 사회는 사회주의 내지 전체주의로 가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이 생겨나는 것도, 이러한 위험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한국 기독교의 사명과 아시아의 복음화·민주화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는 앞으로 동북아시아가 자유 세계가 될 수 있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잃어버리고 인민민주주의나 전체주의로 가면 아시아에서 자유의 공간은 축소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자유 세계와 손잡고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지킨다면, 중국과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의 뿌리를 가지고 아시아를 복음화·민주화 시킬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그렇기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아시아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 점점 아시아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아시아가 복음화와 민주화가 되지 않으면 세계의 복음화와 민주화도 어렵다.
대한민국이 지금 풍랑을 만났다. 그러나 이 풍랑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뜻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깨닫고 나아간다면, 이 풍랑으로 인해 망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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