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우 작가
황선우 작가

이영표 전 축구선수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축구 해설로 주목받은 건 그의 언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부당한 판단을 내릴 때 그동안의 해설가들은 “저 심판 뭡니까” 식의 말을 주로 했다. 그런데 이영표는 같은 상황에 심판을 비판하면서도 “심판의 판단이 부당하더라도 일단 인정하고 경기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요한 사안을 판단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하거나 무능한 모습을 보일 때 “저 사람 끌어내려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98년 월드컵이다. 당시 차범근 국가대표 감독이 국민의 큰 기대를 안고 시작했으나 16강 진출을 처참히 실패했고, 차 감독은 월드컵 끝나기도 전에 경질됐다. 감독이 무능했다 해서 월드컵 끝나기도 전에 경질되는 건 과연 정상일까. 이런 모습을 두고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냄비 근성”이라 비하하는 사람도 많았다.

리더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을 때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만이 답일까. 그게 그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일까. 리더의 퇴진을 말할 자유도 물론 있고 실제로 끌어내려야 할 때도 있겠으나, 적어도 그런 말이 너무 쉽게 나와선 안 된다.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를 죽이려 했던 극단적인 사례만 계속 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던 사례도 우리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어느 리더에게나 그 자리의 권위가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어떤 일이든지 질서를 가지고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를 리더의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하는 건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또한 리더의 자리가 비워진 이후에 대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이는 반드시 선한 목적을 위해서만 진행되어야 한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혹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리더의 자리를 무너뜨린다면, 결과적으로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건 물론 사회는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권위는 어떤가. 그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하는 탄핵은 또 어떤가. 탄핵은 물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하지만 이 역시 최후의 보루여야 하고, 탄핵 이후에 대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대한민국을 살리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결정 혹은 시도되어 온 탄핵은 과연 이대로 진행됐을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보면, 그 탄핵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봐도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무너지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기적적인 성장으로 쌓여온 것이 적폐로 대우받는 현실을 소위 “촛불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혹은 별생각 없이 탄핵을 주도한 사람도 있었겠으나, 악한 목적을 가지고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의 뜻대로 나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주장하던 건 그럼 적절했을까? 이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사회주의적 정책 방향을 보면 그 취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탄핵이 됐다면 그 이후에 대해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정말 됐을까? 2022년 대선을 생각해보자. 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칠 쯤에야 보수 정당 밖에서 또 보수와는 관련 없는 행보를 보여온 윤석열을 영입하지 않았나. 그러고서 근소한 차이로 대선 승리하지 않았나. 만약 문 대통령이 탄핵되어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면, 이재명 혹은 사망하기 전의 박원순이 대통령 당선됐을 확률이 높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그동안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다. 물론 윤 대통령의 계엄은 해제될 게 뻔했던, 준비도 부족했고 지혜롭지 못했던 결정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할 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목적으로 진행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통령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서 직무를 사실상 내려놓겠다고 스스로 말했음에도, 탄핵 말고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목적이 숨어있는 거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계엄과 대통령의 무능함을 비판하면서도 탄핵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탄핵이 너무 쉽게 논해지니 혼란만 가중되고 악한 자들의 꾀에 속는 사람만 늘어난다. 최후의 보루여야 할 탄핵이 유용한 혹은 유일한 공격 수단이 되어버린 사람들, 냄비 근성으로 혹은 꾀에 속아 이를 따르는 사람들. 대한민국의 권위와 질서는 언제 회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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