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평신도목회에서 제일 애매한 부분(사각지대, gray area)이 부교역자에 대한 것이다. 큰 교회일 경우는 다르지만 작은 교회(200명 이하)일 경우는 정말 어정쩡한 것을 보았다. 간단히 말해 부교역자의 역할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우리사역에서 부교역자의 역할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았으니 그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단정적으로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평신도목회에서는 평신도와 목회자의 역할은 뚜렷하다. 목회자는 구비시키는 자, 평신도는 사역자. 그러면 부교역자의 위치는 어디가 좋은가! 당연히 구비시키는 자인 목회자 팀에 합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역에 합류하면 된다.

그런데 발생되는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부교역자가 해오던 목양사역을 평신도가 하게 된다는 데서 오게 되는 공허감이다. 부교역자의 할 일이 없어지지 않느냐? 부교역자의 설 곳은 이제 어디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중소교회에 부교역자가 새로 부임했는데, 그 교회는 우리의 평신도목회(LPM)을 이미 몇 년째 하고 있는터라, 사역자들(평신도 목회자들)이 잘 배치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을 많이 하던 터라, 와서 보니 할 일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는 참 이상하다. 교인들이 다 알아서 하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네...!”

비록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평신도들이 이렇게 한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고 또 배우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담임목사가 “평신도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 그래야 이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다”라고 조언을 해주었던 것이다. 교역자 모임에도 평목팀장이 참석하여 교회 상황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부교역자는 서서히 그 교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제일 바람직한 경우는 부교역자가 사실 평신도목회에 대해 배운다는 것이다. “모르면 배워라”라는 명언은 유치원생뿐만 아니라 어른들께도 필요할 때가 있다. 부교역자일 때 평신도목회 측면에서 담임목사님을 살펴보고, 또 성도들의 반응을 보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시는 행정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이다. 어쩌면 리더그룹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는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키는 평신도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부교역자가 키를 잡으면 과거로 다시 돌아가, 평신도는 소위 ‘실업자’가 또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부교역자에게 의존해버려 평신도리더십 개발은 또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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