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통일학회 참석자들이 단체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단체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주최 측 제공

기독교통일학회가 2일 산정현교회(담임 김관선 목사)에서 ‘한일관계와 역사’라는 주제로 제26회 멘사토크를 개최했다. 이날 권성아 전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해방 공간에서의 사회 상황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권 박사는 “1920년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이에 거부한 기독교는 1938년까지 평양신학교 등 장로교 계통의 사립학교 18개교가 폐교 처분을 당했다. 1939년도에 구속 처형된 기독교인의 숫자는 324명에 이르렀다”며 “그러나 장로교는 1938년 7월 7일 친일단체 조선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해, 황국신민화 운동과 중일전쟁에 협력했다”고 했다.

이어 “그해 9월 10-15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총회장 홍택기 목사)에서 장로교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지지하여 이행하고, 전쟁을 독려하는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강사 등으로 적극 참여하기로 성명을 발표했다”며 “다음 날 장로교 지도자 90% 이상이 신사에 찾아가 절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양선의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따르면, 천주교의 경우 1936년 교황청에서 신사참배를 애국행사로 인정해 어떤 박해도 받지 않았고, 1935년 성결교, 1938년 감리교가 굴종했다”며 “1939년 감리교 신흥우 목사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의 1인이었던 박희도는 친일파로 전향해 신사참배 가담을 주도하면서 또한 ‘동양지광’ 잡지에 글을 발표했다”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의 위대한 구주 예수는 먼저 그 나라를 사랑하라 가르치셨다. 우리의 나라는 대 일본 제국이다. 우리는 종교인이기 전에 조선인이기 전에 먼저 제일로 일본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천황 폐하의 충성한 적자로서 다만 일본을 사랑하라. 이것이 우리들 조선 기독교도에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이다. 나는 감히 위와 같이 확신한다.”

권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의 나라’를 ‘대 일본제국’으로 오도한 신흥우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며 “이후 일제는 1939년 종교단체법을 제정하고, 1940년 기독교 반전공작 사건을 조작해 신사참배에 협력하지 않은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 등 평양 산정현교회 소속 성도들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한 “조선의 기독교는 1942년 3월 ‘일본기독교 조선혁신교단’으로 개명해 일본어 성경만 사용하고, 모세5경과 요한계시록은 민족사상이 있다며 삭제됐다”며 “반면 주기철 목사는 1939년부터 5차례에 걸쳐 구속돼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 감옥에서 살다가 안질과 폐병에 심장병까지 악화돼 1944년 4월 21일 순교했다. 그런데도 평양노회에선 주기철 목사 순교 전부터 그의 목사직을 박탈했다”고 했다.

권성아 박사는 “해방 이후 기독교의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첫째, 1945년 9월 서울에선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한 ‘선린형제단’으로 김 목사는 당시 집회에서 기독교인의 책무는 ‘죽음 이후의 천국 순례’가 아닌 ‘살아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며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극성을 지향하고 종합한 기독교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했다”고 했다.

아울러 “둘째, 1945년 9월 신의주 제1교회 윤하영 목사(신사참배 등 거행), 한경직 목사(영락교회 창립목사)을 중심으로 평안북도의 기독교인을 기반으로 조직된 ‘기독교사회민주당’이었다”며 “이 단체 간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표적이 돼 폭행당했고, 이에 격분한 신의주 기독 학생 5,000명이 시위운동을 강행하고, 11월 23일 공산당 본부 및 보안서를 습격했다”고 했다.

이에 “공산당원과 소련군이 기관총을 쏘아 사상사 50여 명이 나왔다. 이른바 대규모 반공 반소 학생시위인 ‘신의주학생사건’”이라며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등 교회에서 배출한 사회 지도적 인물들이 건국준비위원회 등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에 북쪽에선 공산당원의 기독교 박해는 정치적 현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신탁통치를 두고 ‘찬탁=좌익, 반탁=우익’이라는 이념논쟁의 용광로가 돼 남과 북은 각각의 대통령제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정권으로 나눠지기에 이르렀다”며 “공산당의 박해로 평양을 떠나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여로보암의 레위인 박해로 제사를 드리지 못한 북이스라엘인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사를 드린 것과 같다(대하 11:12-16)”고 했다.

하지만 “월남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남한 기독교가 반공이라는 이념에 갇혀 물질만능주의의 우상숭배를 떨쳐내지 못하고 잘못된 믿음으로 가득해 하나님을 반역하는 남유다의 반역(unfaithful)과도 같아 보이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며 “신앙과 결부된 애국심은 전체주의로 전개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했다.

특히 “북한도 북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배역(faithless)하고 있지만 믿음이 없어진 곳에 다시 복음을 전파하면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이 가득한 곳은 제자리로 돌이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자꾸 심판자의 자리로 올라선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나아가 “북한을 비판하기 전에 남한의 기독교가 ‘주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죄악’을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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