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church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Unsplash.com
조셉 마테라(Joseph Mattera) 박사가 쓴 ‘현대 교회에 스며든 8가지 인본주의적 오류’라는 칼럼이 크리스천포스트를 통해 소개되었다.

마테라 박사는 뉴욕시에 있는 부활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미국 사도지도자연합(USCAL)'과 '그리스도언약연합(CCC)'을 이끌고 있다.

그는 칼럼에서 “인본주의적 가치가 현대 교회의 많은 가르침과 신학을 형성하고 있다”며 “인본주의란 성경의 세계관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시하지 않고 자신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모든 개념이다”고 전제했다. 다음은 칼럼의 요약.

1. 당신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거나 꿈꾸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빌립보서 4장 13절인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를 문맥을 무시한 채 인용하여 자신의 꿈을 이룬 성공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희망적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없으며, 꿈을 꾼다고 해서 무언가를 실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분의 뜻에 따른 사명에 맞는 믿음의 분량을 주셨다(로마서 12:3). 이는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반한 것이다(에베소서 4:7, 고린도전서 12:5-7).

따라서 아무리 노력하고 바라며 꿈꾸더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설계에 따른 우리의 자연적, 초자연적인 능력에 따라 역량을 제한하는 사명을 주신다.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들은 성경이 아닌 세속적 인본주의에서 그 근거를 둔다.

2. 해로운 사람들을 당신의 인생에서 끊어내라

소셜 미디어에서 ‘해로운 사람들을 삶에서 배제하라’는 조언을 하는 게시물을 많이 보았다. 우리는 ‘해로운 사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들이 단순히 사귀기 힘든 사람이나 항상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이러한 게시물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한 자의 허물을 감싸주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로마서 15:1).

더욱이, 의견 불일치는 때때로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는 건강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린도전서 11:19).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모든 것을 함께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고린도전서 13장). 만일 해로운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나쁜 영향을 미치고, 사람을 죄에 빠뜨리거나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그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갈등 없이 고립된 삶을 살려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는 갈등을 처리하면서도 높은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정신을 가진 약한 마음을 키우게 한다. 이는 자기 중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다.

3. 당신이 열정을 가진 일만 하라

열정이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나타낼 수 있지만, 사명과 무관한 취미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가르침은 세속적 인본주의 성공 철학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이다. 우리는 열정이 없는 많은 일들도 해야 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에 흥분하셨다고 생각하는가? 그분은 “자신의 행복을 좇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 그 일을 하셨다(마태복음 26:36-46).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열정이 사라지면 청지기 정신이 그 자리를 채운다.

4. 개인 정체성의 강화

오늘날의 세속적 인본주의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정체성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문신, 성별, 성적 생활 방식, 복장 또는 대의명분 등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려는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개인주의는 교회에도 스며들어, 교인들과 교회들이 지역사회의 주목을 끌기 위해 차별화되고, 더 우월한 모습을 보이려는 경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개인 정체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개념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여 그분의 왕국과 영광을 위한 것과 반대된다.

5. 개인의 자율성 숭배

루시퍼가 하나님과 하늘의 공회보다 자신을 높이려 했던 것처럼(이사야 14:12-14),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경배를 받으려 했다(마태복음 4:10). 현대 문화에서는 인간의 자율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른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자아 실현을 더 우선시하는 기독교인과 교회는 세속적 인본주의의 잘못된 함정에 빠져 있다.

6. 공동체 없는 영성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제자 공동체와 연결되지 않고도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을 ‘영적’이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신앙을 중시하여 타인과의 관계에서 고립된 상태로 자신을 정의한다. 이러한 영성 개념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그분의 가족으로 묘사하는 성경적 기독교가 아닌 인본주의적 뉴에이지 종교(예: 힌두교와 불교)에 더 가깝다(고린도전서 12장).

7. 거룩이 없는 행복감

일부 사람들은 ‘마음챙김’과 같은 인본주의적 기법을 실천하며, 삶의 혼란 속에서도 환경을 조절하여 평온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행복을 거룩함(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되는 것)보다 우선시하는 신자들은 세속적 인본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8. 계몽주의적 지식과 진리 개념

세속적 인본주의의 ‘계몽주의’(1685-1815)가 나타난 이후, 인류는 진리를 과학을 통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려고 노력해왔다. 기독교인이나 교회, 교파가 초자연주의를 거부한 채 기독교를 단순히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것으로 축소할 때, 그들은 세속적 인본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