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숲’이 29일 부산 포도원교회(담임 김문훈 목사)에서 ‘6.25와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14차 이승만 포럼 1부에서 조평세 박사(1776연구소 소장)가 강의했다. 그는 이 강의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지키고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조 박사는 “영락교회 설립자 한경직 목사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핵심은 ▲개인 인격의 존중 사상 ▲개인의 자유 사상 ▲만인의 평등 사상 등이며 이 사상의 근본은 바로 신구약 성경에 있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 “한 목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나라와 민족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뤄가신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모세를 중심으로 하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는 건국의 모형”이라며 “하나님은 모세를 필두로 애굽 땅에서 핍박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켜 ‘자유’를 선사했고, 십계명 등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법’을 만들었으며, 성막을 통해 예배와 임재를 경험하도록 ‘교회’를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자유민주주 국가의 건국 세 원칙은 자유와 법치, 그리그 교회”라며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는 성경에 있다”고 했다.
가령 “정치학자 도널드 루츠(Donald Lutz)는 미국 건국을 전후로 1760년부터 1805년까지 1만 5천건의 미국 정치문헌을 검토한 결과, 몽테스키외, 블랙스톤, 존 로크보다 모세와 바울 인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특히 “아브라함 링컨은 ‘성경이 입증하는 진리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는 나라만이 축복을 받는다(시편 33장 12절)는 것’이라고 했다”며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미국의 법의 기초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그것이다. 우리 권리장전의 기초는 출애굽기와 마태복음, 이사야서와 바울서신에서 얻은 가르침에서 비롯됐다’고 했다”고 했다.
아울러 “미국 기독교인 다수는 공산주의에 맞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후 보루로서 한국전쟁을 규정하고, 이 전쟁에 참전했다”고 했다.
그는 “빌리 그래함 목사는 한국전쟁 직후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보를 보내며 ‘이번 위기를 맞은 대통령께 지혜를 주실 것을 수백만 미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즉각 공산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남한은 기독교인 비율이 세계 어느 곳보다 높은 국가’라고 했다”며 “미국 감리교 소속 프레더릭 해리스 목사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야 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24년간 상원 원목으로 재직한 해리스 목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돕는 비공식 한국대사로 활약했다”고 했다.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해리스 목사가 담임으로 있던 파운드리 감리교회 출석 교인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리스 목사는 미국 정계에 한국에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아울러 “한국전쟁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었던 존 포스터 덜라스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공산주의를 막을 최후 보루는 대한민국’이라며 한국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전쟁 참여를 설득했다”며 “그 또한 독실한 장로교인으로서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고 영락교회가 개최한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했다.
조평세 박사는 구한말 조선 선교사들의 자녀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일화도 전했다. 그는 “1884년 로버트 새뮤얼 매클레이 선교사는 고종으로부터 학교와 병원을 중심으로 한 선교 윤허를 받고,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입국했다. 1884년 호러스 뉴턴 알렌, 1885년 호러스 G. 언더우드·헨리 G. 아펜젤러가 차례로 조선으로 입국했다”며 “연세대 전신 연희대를 세운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 입국 직후 결혼해 1890년 서울에서 호러스 H. 언더우드를 낳았다. 호러스 H. 언더우드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대 졸업 이후 20대 시절 다시 조선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가 1942년 일제에 의해 쫓겨났다”고 했다.
조 박사는 “그러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호러스 H. 언더우드는 미군정의 고문으로 입국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에델 언더우드는 좌익에 의해 1949년 암살 당했다”고 했다.
조 박사는 “호러스 H. 언더우드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호러스 H. 언더우드 주니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서 미 해군 복무를 했고,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둘째 아들 리처드 언더우드는 육군 장교로 OSS 훈련을 받다 형과 아버지보다 먼저 한국에 재입국해 한국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며 “호러스 H. 언더우드의 두 아들들은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이 북진했을 당시 중공군 개입의 첩보를 맥아더 장군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또 “윌리엄 쇼 부자도 있다. 아버지 윌리엄 얼 쇼 선교사는 1921년 아내인 아델린 해밀턴 쇼와 한국으로 와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했다”며 “조선 태생으로 그의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1947년 전역한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 도중 한국전쟁 발발로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의 친구들을 돕겠다’며 미국 해군에 재입대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그러다 1950년 9월 오전 정찰 중 북한군 공격으로 28세에 사망했다”고 했다.
아울러 “조선 선교사들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조선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미국의 한국전쟁 참여를 호소했다”며 “1947년 1월 북미해외선교대회에서 발표된 결의안은 ‘한국과 북미는 양국 기독교인들의 관계를 통해 오랜 시간 지속돼 온 긴밀한 유대가 있다. 우리의 한국인 형제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자유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두 번 실망 시켜선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고 했다.
또한 “1950년 4월 감리교 해외선교부는 ‘한국은 공산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 간의 쟁점이 극동 어디보다 더욱 명확하게 규정된 곳’이라고 강조했다”며 “1950년 12월 윌리엄 얼 쇼 선교사는 그의 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죽은 직후 쓴 책 ‘갈림길에 선 한국’에서 ‘만일 기독교적 가치인 민주주의가 승리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인 지역에 우방국을 얻게 될 것이며,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심장부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남한의 운명은 미국 기독교에 달렸다. 한국에서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와 기독교 민주주의가 승리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고 했다.
조평세 박사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미국은 북진했고 북한의 전시 수도 강계로 진군을 예정했다.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해 ‘크리스마스 전에 집에 간다’는 얘기도 돌 정도로 사기는 등등했다”며 “하지만 중공군 12만 명의 기습으로 미국 해병대 제1해병사단이 주축이 된 유엔군 3만 명은 장진호 일대에서 포위됐다. 결국 유엔군은 중공군에 의해 장전호 전투에서 패전한 뒤 퇴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이 기간 미군 등 유엔군은 장진호 일대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큰 위기를 맞았다. 유엔군은 장진호에서 하갈우리를 거쳐 고토리·진홍리·흥남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미군들은 한국 피난민들을 싣고 흥남에서 부산으로 철수작전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때 해롤드 보켈 선교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졸업 이후 1929년 한국에 입국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됐고 해방 직후 한국에 돌아와 기독교 재건 작업에 주력했다”며 “또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군에 자원으로 입대,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고 했다.
조 박사는 “해롤드 보켈 선교사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미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을 설득해 함흥의 기독교인 3000여 명을 흥남으로 철수시킬 열차 편을 확보했다. 실제로 한국민 5만여 명이 흥남으로 철수했다”며 “그는 또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들을 상대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였다. 2000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이 가운데 200여 명이 훗날 목사나 전도사가 됐다”고 했다.
특히 “1950년 12월 24일 워커 장군 사망 이후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일화도 유명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매튜 리지웨이 장군은 1951년 1월 사기가 떨어진 전 미군들에게 보낸 글에서 참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매튜 리지웨이는 이 글에서 “한국전쟁이 미국의 동맹국 한국의 자유에만 한정되지 않고, 서구 문명의 힘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서 꽃피도록 하신 자유 문명의 힘이 과연 공산주의를 저지하는 데 있다는 것” “인간의 존엄을 비웃고 포로와 시민들을 죽이는 공산독재세력이 개인의 권리를 신성히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를 비웃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가 생존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시체처럼 사라질 것인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전쟁은 한국의 국가적 생존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이 전쟁은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즉 우리가 바친 희생과 도움은 타인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한 직접적인 자발적인 행동이다” 등을 강조했다.
조평세 박사는 “한국전쟁은 공산주의냐 개인의 자유냐의 투쟁”이라며 “한국전쟁은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및 선교사들의 복음 수호 전쟁이기도 했다”고 했다.
한편, 자유의 숲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저서를 탐구하고 한국교회 다음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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