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간들은 어떤 시대 사조 속에 사는가? 이러한 질문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전통 속에서 지켜 오던 도덕이나 사회생활의 질서가 정말 놀랄 정도로 많이 흐트러져 무질서 속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자유스러운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산다 하지만, 인간 정신계는 어떤 철학의 영향력에 강하게 이끌리어 오히려 자유를 상실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자.
오늘날의 인간 삶의 행태나 정신을 말하려면 할 수 없이 중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의 특징은 신권주의로서 모두가 교회의 권위나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따르던 시대였다. 어거스틴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이 절대적으로 강하게 강조되던 시기여서 인간의 자유, 자율성, 권리 같은 것은 성경의 절대성의 영향력 아래 놓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문화, 즉 철학, 사상, 기술, 또는 문학작품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결과 암흑기라 한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반작용이 움트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신권주의에 반기를 든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주후 800여년 후에 발생했는데, 프랑크 왕국의 샤를르 대왕이 인문주의 문화운동을 서서히 벌여 나간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도 서서히 인간 자율성 또한 부각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12세기에 신학자 안셈(Anselm)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스콜라주의 (Scholasticism)를 내 놓았다. 이는 신학과 철학의 종합, 또는 신학의 계시(Revelation)와 철학의 이성(Reason)의 상호 협력관계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존재 및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만이 아니라 철학도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14세기의 에라스무스를 거쳐 완전히 인간 정신문화가 무르익어 꽃을 피우는 시기가 되었다. 15세기의 르네상스(Renaissance)가 바로 그것이다. 르네상스의 특징은 인문주의인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사조가 발달하였다. 신 중심에서 이제는 인간중심 세계로 바뀌어 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이탈리아를 넘어 영국에서도 활성화 되었다. 경험주의, 공리주의, 그리고 합리주의 같은 철학이 영국에서 발달하게 된 것이다.
18세기에는 독일에서 철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헤겔(Hegel)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특히 칸트는 자연주의 철학을 하였는데, 그의 철학적 툴(연장)은 이성(Reason)이다. 이성은 갈등이나 모순이 없는 논리의 도구로서, 그는 그 이성으로 격식, 형식, 사물에서 갈등과 모순이 없는 형이상학적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도덕이나 의무, 전통, 규율 같은 것을 존중해야만 하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중반까지 내려와 근대라는 시대를 만들었다. 그 시기, 특히 189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무렵까지를 모더니즘(Modern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즉 후기현대주의 시대가 되었다. 후기현대주의의 특징은 이성을 중심으로 한 어떤 격식이나 규범을 강조하던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2천여 년 기독교의 진리, 도덕, 전통의 가치 같은 것은 물론, 철학에서 칸트의 이성주의마저 부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학자들은, 우선 프랑스 철학자 폴 미쉘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1984)다. 그는 정신병동을 중심으로 한 정신병리학자로서 1961년 「광기의 역사(The History of Madness)」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서구 인문주의에서 발생한 자유주의자로서 전통 도덕적 관념같은 것을 깨트려 버렸다. 그는 “성을 선용하라”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자유로운 성교환, 동성애 같은 행태를 일반 문화화 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또 다른 학자로는 재키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있다. 그 역시 유대계 프랑스/알제리 출신으로 해체를 강조한 철학자다. 해체라 하면, De-construction으로 말 그대로 어떤 조직개념, 정립된 개념, 전통, 규범, 이런 것들을 해체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되는 대로” “하고싶은 대로”와 같은 주의다. 후기현대주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고정관념 깨기”라 할 수 있다. “…은 반듯이 지켜야 한다”는 예절이나 공중도덕, 절대적 진리같은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관의 혼돈”을 후기현대주의의 성격, 특성으로 말 할 수 있다. 1960년대의 히피족, 닭벼슬 머리, 빨강/노랑 머리, 멀쩡한 청바지 찢어입기, 담벼락 낙서를 예술로 보는 것, 서재의 책꽂이를 비스름하게 놓는 것, 추상화, 등 이런 것들은 모두 후기현대주의가 낳은 결과들이다.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인간 사회에 공헌한 면도 있긴하다. 남성중심, 가부장제도, (돈, 권력, 신분같은 것으로부터 오는) 힘 중심주의, 중앙집권주의를 해체시켜 인간대접받지 못하던 저변층들도 동일한 삶의 기회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게 한 것들이 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인간정신계를 흩트려 놓아 “가치관의 혼돈”을 어느 분야에서든 겪게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런 먹구름 아래 상대주의 이론이 나오게 되었다. 상대성으로 그 이론의 원조는 아인슈타인이다. 이것이 각 분야에 뻗어 나가 종교분야에도 이르게 되었는데, 성경의 절대주의를 부정하고 종교적 다원주의나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그런 주장도 나오게 된 것이다. 유신진화론도 이러한 흩트러진 사조 속에서 진리로서의 빛을 한번 봐 보겠다고 나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류가 갑작스럽게 맞은 코로나 등장과 비숫한 모양으로 나타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후기현대주의(Postmodernism)에 뿌리를 둔 해체같은 다양한 인간사조들로 기독교 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경의 교리, 구원에 이르는 진리, 신앙, 교회의 전통관념, 이런 것들이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초기 신중심주의로 인해 인간존재의 의미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과 자율성을 너무 강하게 속박한 결과, 그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던 인문주의가 절제없이 확산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부작용의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숙고하는 자세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기독교 교회가 이러한 인간주의를 극복하고 영원 무궁히 존재할 것에 대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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