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목사
김창환 목사

서울남노회와 미국 대서양노회와 MOU를 맺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를 2019년 11월 말에 도착하여 12월 3일에 한국으로 입국하는 일정이 있었다. 12월 2일 미국 위싱턴 에덴장로교회에서 대서양 노회가 있었다.

대서양 노회와 서울남노회 간에 MOU를 체결하고, 저녁 7시쯤 되어 서울 남노회원들과 숙소를 가기 위하여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선배 목사님의 승용차에 나를 포함한 노회원 3명이 탔다.

그날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추웠다. 차가 숙소를 향하여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별안간 쾅 소리와 함께 차체가 흔들리더니 앞쪽에서는 에어백이 터지고 승용차 안에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이젠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온몸에 심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더 두려웠던 것은 ‘후미에서 또한 추돌사고가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몸을 떨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그날 저녁 7시쯤에는 비가 내렸는데 하필이면 교차로 사거리의 신호등이 고장이 나서 직진하던 우리 차와 좌회전으로 돌려고 하던 차가 교차로 사거리에서 충돌사고가 난 것이란다.

정신을 차리고 운전석에 있는 선배 목사님을 향해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다행히 ‘미안해, 미안해’라는 소리만 하였다. 본인이 잘못해 사고가 났다고 여겼는지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선배에게도 ‘괜찮으세요’하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천만다행이다. 나는 앞에 있는 두 분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염려했는데 다행이다. 내 옆에 있던 후배 목사가 통증이 심했던지 신음하더니 곧 혼절했다.

몇 분 지나서 911 앰뷸런스가 여러 대가 왔으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2곳으로 나누어 근처 병원으로 긴급하게 후송되었다. 병원에서는 응급 처치를 하고 있었고, 담당 간호사에게 물으니 전치 5주에서 7주가 나온다고 하였다. 원래 일정에 의하면 사고 다음 날 3일에 위싱턴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사고 당일 내일 출국해야 된다며 양해를 구하였고 마침 후배 목사님의 친척이 그곳 경찰관이라 여러 도움을 받고 병원에서 비행기를 탑승 해도 괜찮다는 허락서를 받았다. 그 다음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저녁에 응급실로 실려 가서 우측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우측 다리만 X-ray를 찍었다. ‘우측 경골 간부 골절’이 확인되어서 먼저 통증을 줄이는 약을 처방받았다. 나중에 정밀 검사를 보니 여러 곳이 다쳤다. 미국에서 한 달 이상 치료를 했어야 했다. 그러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환자로 여겨져 꼼짝없이 미국 병원에서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있을 뻔했다.

다음 날 아침 우측 다리에 임시 붕대를 한 채 휠체어 타고 워싱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검색대 앞에서 못 들어갔다. 경찰과 정보기관에서 나와 붕대를 맨 채로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며 거부를 하는 거였다. 그래서 본인이 지금 붕대를 풀겠다고 하니 그건 안 되며 기다리라고 했다. 아마도 붕대 속에 폭탄이라도 숨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혹시 테러범일지 모르니...

911 사태 이후 워싱턴 전체 공공기관에는 중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지키고 일일이 검색하던 때였다. 30분 이상 경찰과 정보기관에서 여기저기 연락하여 조사를 하더니 신원조회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는지 탑승 허락을 받았다. 즉시 검색대를 통과해 비행기 출발 10분 전,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여 12월 4일에 입원하였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양다리에 인대가 손상되었고 우측 다리가 골절이 되었고, 우측까지도 골절되었다. 좌측 폐에 피가 고이기 시작하여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였고 폐의 피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다음에서야 전체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에선 7주 정도만 된다고 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보니 3개월 정도 입원했으니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으면...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은 병원비가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만일 미국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면 병원비만 적어도 5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다행히 그때 같이 동행했던 어느 장로님이 말하기를 ‘미국에는 간호할 친척도 없는데 혼자 남아서 병원에 입원하면 뒤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에 한국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다. 최소 5억 원 정도는 든다고 하니...)

김창환 목사
병상에 누워있던 김창환 목사. ©김창환 목사 제공

약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은 다음, 2월 24일이 되어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택에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동네에 가까운 재활병원에 10여 차례를 도수치료 및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이제는 ‘휠체어’ 혹은 ‘목발’을 의지하지 않고 걸어서 다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할 따름이다.

문제는 사택이 빌라 주택인데 옥상층, 4층이라 불편한 다리로 지상으로 내려올 때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정상적으로 걸으려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받았었다.

새벽기도를 인도하려면 약 1200미터 거리의 교회를 걸어가야만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자녀들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옮기자고 성화인데 문제는 돈이었다. 다행히도 다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한국주택공사로부터 2억 원을 30년 상환하는 조건으로 융자받게 되었다. 그 결과로 제가 담임하는 강서교회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이젠 4층에서 내려오는 불편함도 해소되었으며 사택과 교회 간의 거리가 1200미터에서 500미터로 가까워져서 도보로 교회를 가는데 훨씬 더 수월해졌다.

생각지 않는 감사거리가 생겼다. 아파트를 구입한 지 1년도 안 되어 2억 원 이상이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게 되었다. 만약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4층 꼭대기 빌라 주택에서 살다가 은퇴할 뻔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일로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고 융자를 받는 만큼의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아마 그것이 나에게는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니 은퇴 후에도 이 아파트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닌가! 나보다도 교인들 모두가 잘 되었다고 기뻐하니 참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나서 미국 보험회사로부터 교통사고 보상금이 나왔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통사고 가운데도 생명을 지켜주셨고, 생각지도 못한 노후까지도 챙겨주셨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 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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