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Worshae/ Unsplash.com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이 제프 파운틴(Jeff Fountain)이 쓴 ‘기독교 교육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칼럼을 최근 게재했다.

제프 파운틴은 슈만유럽연구센터(Schuman Centre for European Studies)의 소장이며,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20년 동안 국제 및 종교 간 선교 기구인 유스위드어미션(Youth With A Mission)의 유럽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칼럼에서 “내 임무는 먼저 서양 교육 발전 과정을 추적하여, 기독교 신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는 것이다. 사실 지난 2천 년 동안 그 이야기는 대부분 기독교적이었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많은 교육이 세속화되었다”며 “의무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곳에 이르렀을까?”라고 반문했다.

파운틴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를 위한 교육을 중시한 최초의 인류 사회는 새로 해방된 이스라엘이었다. 모세 오경, 즉 토라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 말씀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명기 6:6)라고 기록되어 있다”며 “이스라엘은 이로써 세계 최초의 완전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지식 분야에서 유대인들의 엄청나게 불균형적인 기여로 이어진 풍부한 유산”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대교에 뿌리를 둔 초기 기독교는 교회 문제와 일상생활에서 가르치는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스와 로마가 이성에 기반한 고전 교육 과정을 발전시킨 반면, 교육은 상류 계층과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며 “성경의 백성으로 알려진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계시를 추가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남성과 여성, 노예와 자유인 모두에게 의미와 존엄성을 부여했기에 소녀와 소년 모두를 가르쳤다”고 했다.

이어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초기 교부들을 중심으로 교리 학교가 로마, 에베소, 알렉산드리아로 퍼졌다. 이들은 구두 질의와 답변을 통해 남성과 여성 모두를 가르쳤다”고 덧붙였다.

또한 “5세기 초,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중세 학문을 형성하고, 그 후 수 세기 동안 기독교 학계에 영향을 미칠 교육의 기초를 놓았다”며 “아일랜드 수도원들은 유럽의 새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자 수도사들을 파견했고, 이들은 ‘왕의 제자, 민족의 교사’로 알려졌다”고 했다.

파운틴은 “아헨에서 샤를마뉴 대제는 9세기 초에 앵글로-켈트 수도사인 요크의 알퀸을 임명하여 신성 로마 제국 전역에서 교육을 장려했다”며 “대성당 학교는 적어도 수습 사제와 공무원들을 위해 고전 교육 과정을 기독교 신학적 틀에 포함시켰고, 이는 첫 번째 천년기(서기 1년~1000년) 후반에 발전했다”고 했다.

그는 “12세기까지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교회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으나, 학자들이 수도원 및 대성당 학교와 독립적으로 학문과 교육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학자 조합(Guilds of scholars)은 유럽의 대학들을 발전시켰는데, 처음에는 볼로냐와 파리에서, 그 후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설립되었다”며 “교장, 학장, 감독관 등의 공식 직함, 학사 가운, 대학 건축 양식 및 예배당 서비스들은 모두 대학의 수도원적 기원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날까지 옥스포드의 모토는 ‘주님은 나의 빛이시라’(Dominus illuminatio mea, 시편 27편)”라고 설명했다.

또한 “신학을 과학의 여왕으로 여겼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독일과 프랑스(대학)에 퍼진 고등학교의 체육관(gymnasium) 스타일을 개발한 요한 셀레는 종교 개혁 이전의 교육을 형성한 많은 기독교 이름 중 두 명에 불과하다. 에라스무스, 루터, 칼빈은 모든 계층의 남녀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옹호했고, 후자의 두 명은 세금 지원 공립학교를 주장했다”며 “이는 각각 독일 공립학교(Deutsche Volkschule)와 제네바 아카데미(Geneva Academy)로 이어졌으며, 이는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미국 학교들의 모델이 되었다”고 했다.

또 “프랜시스 베이컨은 창조 명령에 대한 개혁 신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상태의 구제’를 위해 과학과 학문의 비전을 개발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를 탐구하기 위한 귀납적 과학적 탐구 방법을 통해 교육의 임무를 과거의 지식과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지식의 발견까지 확장시켰다”며 “이 과정에서 그는 신앙과 학문을 분리함으로써 교육의 세속화에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파운틴은 “그 이후 지식의 통일성을 훼손시킨 영향으로는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사상과 전문화 및 과학적 발전을 요구하는 산업 혁명이 있었다”며 “교육은 ‘무엇’과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왜’와 ‘무엇을 위해’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학과 철학은 세속적 합리주의에 밀려났고,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목적이 교육의 목적을 정의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에 뿌리를 둔 지식의 통일성에 기초한 기독교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라며 기독교 교육의 재건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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