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분명하게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일에 되므로 가증히 여겨 반드시 죽일 것을 명하고 있다(레 20:10-16).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고전 6:9-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누구든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의 며느리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아내와 자기의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살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하여 교합하면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그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0-16).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막 10:6-8).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성적인 타락에 대해 가증한 것이라고 규정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욕과 욕정으로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질서를 거역하고 있다. 점점 더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성적인 타락은 합법화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서구권에서는 성적인 타락을 미화하며 성적인 타락을 용인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동성애·동성결혼을 조장하는 음란성 문화들이 세상 전반으로 깊숙히 들어오고 있다.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20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이성결혼과 똑같이 인정했다. 우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고 할 때 ‘합법화’는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 이는 결혼의 법적 정의에 동성 간의 결혼도 포함하는 것이다. 각국의 민법이나 결혼법에서 결혼은 ‘남녀’ 혹은 ‘이성’(異性) 간 결합으로 정의돼 왔다. 이를 ‘이성 또는 동성 간의 결합’으로 고쳐 동성 간 결합을 추가하거나 ‘두 사람 간의 결합’이란 성 중립적 용어로 결혼의 법적 정의를 변경하는 것이 동성결혼의 합법화다. 그 이후에 미국·프랑스·영국·독일·캐나다 등 34개국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하였다. 그렇게 되다 보니 세상은 성적인 타락을 공인하는 쪽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그런 흐름을 따라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미 합법화했던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인해서 심각한 가정 파괴와 성(性)의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여러 행태들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 이에 큰 충격을 받고 많은 교회와 사회단체들이 동성결혼의 합법화의 폐해성을 경험하고는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폐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동성애·동성결혼의 합법화가 가져온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정치권에서 동성애·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런데 지난 6월 1일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라는 이름이 붙은 ‘무지개 예수’라는 단체에 속한 30여 명의 목회자들은 이날 오전 퀴어축제 개회식과 함께 서울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앞에서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무지개 축복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치밀한 각본으로 퀴어축제가 공식 시작되기 전인 오전 11시 30분경 3분 동안 기습적으로 ‘퀴어축복식’을 거행했는데, 이미 감리교단이 인천 퀴어축제 축복식을 한 목사를 징계한 일이 있어서인지 희한한 동성애 무늬를 한 스톨을 두르고 명단조차 발표 못한 채, 무엇에 쫓기는지 종이 한 장 들고 서둘러 읽더니 허둥대며 우왕좌왕 마쳤다.
기독일보 기사(6월 3일 자)에 따르면 무지개 예수 측은 이날 “우리는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축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축복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밝히고,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팎에 존재하는 퀴어 길벗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길벗들을 축복하며 동행하는 게 죄냐 아니냐는 논쟁에 휘말릴 이유도 필요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계속 더 많이 더 자주 축복할 것이다. 인류와 비인류 그리고 다양한 모든 존재들을 차이와 다양성에 근거해 더불어 살게 하시는 하나님/하느님의 사랑을 따라, 우리는 계속 축복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을 것”이라며 “그러므로 ‘축복은 죄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들의 차이와 다양성을 통해 만나는 ‘낯선 하나님/하느님’을 보고 듣고 만지고 배우며 우리의 제한된 신 이해를 넓혀가는 게, 더 소중한 선택이자 신앙적 도전이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이런 주장은 퀴어신학과 상당히 일치하다. 퀴어라는 괴상한 용어들이 성(性)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퀴어란 용어는 ‘낯설고 이상하다’는 뜻이다. LGBT나 QIA(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닝, 인터섹스, 어섹슈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퀴어신학은 어떤 신학인가?
퀴어신학을 주장하는 테드 제닝스(Theodore W. Jennings, Jr.)의 대표 저작은 『예수가 사랑한 남자』(Man Jesus Loved, 2003)이다. 한마디로 '게이적 성경 읽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제닝스는 성경 안에 동성애자들이 많다고 유추하면서 그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먼저 다윗과 요나단(삼상 18:1, 20:20; 삼하 1:26)의 애정관계를 위시하여 다윗과 사울(삼상 16:21)의 관계 역시 연인관계로 추정하면서(요나단-다윗-사울의 삼각관계), 룻과 나오미(룻 4:16)의 관계를 문학작품에 최초로 등장한 레즈비언 로맨스로 상정하며, 다니엘과 환관장(단 1장)도 동성애 관계였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또한 예수께 병든 하인을 고쳐달라고 청원했던 백부장과 종(마 8:5-13)의 관계 역시 동성애 관계라고 주장한다. 참람하게도 제닝스는 예수 그리스도마저 동성애자로 해석함으로써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는데, 특히 예수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사이가 동성애 관계였을 개연성을 제기한다. 요한이 예수의 가슴에 안겨 누워있는 육체적 친밀함에서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라, 동성 간에 육체관계를 나누는 모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요 13:21-26). 더 나아가 제닝스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옷을 벗은 상태였고 제자들은 그의 무릎에 눕거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바짝 기대었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성애적 사랑의 관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예수가 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닝스의 성경해석을 보면서 절감하는 것은, 음란의 영에 사로잡혀 음란의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성경을 해석하니까 모든 것을 음란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다. 참으로 참람하다. 그런 괴상한(퀴어) 신학이 한국 교계 일부에게 스며들고 있어서 안타깝다.
성경은 동성애를 ‘가증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가증한 것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토에바’,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 혹은 금지하신 것이란 뜻”이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역하고, 동성애를 “가증한 일”로 규정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가 더 이상 한국교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한국교회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동성결혼의 합법화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동성애·동성혼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창환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서울 강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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