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는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1억 원을 기부받아 북한 인권증진을 위해 10년 이상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 국군포로나 납북자 구출에 헌신한 이 또는 대한민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 중 한 명을 선발해 매년 5월 물망초의 날에 ‘물망초人 상’을 시상한다. 수상자에게는 1천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주어진다.
물망초에 따르면 중국철학의 대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오가와 교수는 일본에서 ‘북한인권운동의 시조’로 불린다. 1994년에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창설해 대표를 역임한 이후 2008년에는 정치범수용소 폐지를 주장하는 ‘No Fence’(북조선 강제수용소를 없앨 행동 모임)를 창설해 지금도 대표를 맡고 있다.
그러나 오가와 교수는 젊었을 때 좌파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매료돼 재일 한국인 북송을 지지하던 학생이었다고.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오가와 교수가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1993년 8월 도쿄에 있는 한 식당에서 열린 ‘북조선 귀국자 모임’에 참가한 일이었다고 물망초는 전했다. 이 모임에서 식당 여주인이 ‘북송선을 탄 세 아들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고생하다 한 명은 죽었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야 들었다’는 증언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성은 ‘오빠가 정치범으로 체포돼 숨진 사실을 알고나서 조총련에 2000만엔을 바치고 올케를 구출했다’는 증언도 했다. 그 오빠라는 여성은 평양방송의 일본어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재일교포였다.
그날 오가와 교수는 이런 증언을 듣고 경악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지상천국’이라는 북한으로 떠났던 북송자들의 일본 가족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대동소이했다고 물망초는 전했다.
물망초는 “특히 강제수용소에 대한 증언은 젊은 지식인의 뇌리를 흔들었다”며 “지식인으로서 침묵할 수 없다는 양심의 소리가 계속 그를 괴롭혔다”고 했다.
이어 “이들을 북송시킨 일본인은 물론 처참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결심했다”며 “1년여 고민하던 도쿄대 오가와 교수는 1994년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창설했다”고 했다.
‘북송교포 가족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목표를 내건 이 단체는 강연회나 시위, 청원 등의 방법으로 일본 정부 등에 호소했다.
오가와 교수는 활동의 초점을 전반적인 북한 인권문제로 옮겨 강제수용소 철폐에 전력을 기울였고,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하는 탈북자 수기 읽기 운동도 벌였다. 결국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 이어 ’No Fence’라고 하는 북조선 강제수용소를 없앨 행동 모임을 만들어 80이 넘은 노령에도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북한인권에 대한 끊이지 않는 오가와 교수의 활동은 그에게 ‘북한인권운동의 시조(始祖)’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고 물망초는 전했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북한인권영화제’도 오가와 교수를 비롯한 야마다 후미아키(76) 오사카경제대학 교수, 사에키 히로아키 전 산케이신문 편집위원 등 수 십 년 동안 일본에 북한인권 실상을 알려온 지식인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북한인권영화제가 2019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한편, 제1회 물망초人 상은 폴란드 태생의 북한인권운동가 요안나 호사냑씨가, 제2회 물망초人 상은 최성룡 납북자가족회장이 수상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물망초人 상 시상식은 오는 2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열리며, 시상식 외에도 전 평양음대 교수 황상혁 피아니스트의 공연과 오가와 교수의 발표에 이어 물망초 총회도 진행된다.
물망초는 2012년 통일부 인가를 받은 비영리단체로 국군포로 구출 및 정착지원, 탈북청소년 교육과 장학금지급, 탈북자들을 위한 정착지원 및 교육, 물망초합창단 등 다양한 통일운동과 북한인권개선 및 증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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