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있어서 선교는 기본적으로 ‘종교의 확장을 위한 활동’이라 할 수 있고, 종교에 있어서 윤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즉 선교적 과제는 기본적으로 진리의 전파를 통한 해당 종교의 확장을 위한 활동이고, 윤리적 과제는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이 그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하는 행위 또는 사회적 책임인 것이다.
여기에서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가 구분되지 못하고 혼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원인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선교는 윤리적 과제를 통해서도 수행되기 때문에 윤리적 과제가 선교적 과제로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즉 이웃을 향한 선한 삶과 사랑의 행위와 같은 윤리적 과제를 통해서도 복음이 증거되기 때문에 윤리적 과제가 선교적 과제로 인식되기 쉽다.
둘째,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는 각각 ‘지상 대 위임령’(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과 ‘큰 계명’(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똑같이 중요한 명령으로 인식되면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 안에 이 두 계명이 동등하게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선교와 윤리는 기본적으로 관심 대상과 목표가 판이하게 다르다. 즉 선교는 기본적으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반면, 윤리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자들의 삶의 문제 개선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물론 통전적 선교신학의 입장에서는 “둘 다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 아닌가? 이 중요한 두 가지를 왜 나누려고 하는가?”라는 이의제기를 할 것이다. 필자 역시 이 두 가지가 다 교회의 중요한 두 가지 사명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해서 그 두 가지 사명을 하나의 사명으로 만들어 ‘선교’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선교와 윤리를 하나로 섞는 선교 개념은 선교의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자연히 그 선교의 효율성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선교와 윤리의 과제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점에서 선교에 우선성을 두는 것이 옳다.
첫째, 기본적으로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이후에 실현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윤리를 무시하거나 선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중요한 교회의 사명이다. 그러나 이치상 선교가 있을 때 그 선교를 통하여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에게 기독교 윤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먼저 아기가 태어나야 그 아기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선교는 절대적 명령이고 윤리는 상대적 명령이다. 선교는 어떤 상황에서든 분명하게 수행되어져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인 반면, 윤리는 상황에 따라 그 수행의 유형이 달라진다. 같은 사랑의 계명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무엇이 사랑인지는 보는 입장과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를 사랑할 때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를 그대로 살도록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를 그 죄로부터 나오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교회는 윤리적 과제보다 선교적 과제를 더 절대적이고 우선적인 명령으로 인식해왔다.
셋째,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는 서로 상충될 수 있으며, 이때 기독교는 선교적 과제에 우선성을 두고 선교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박해하는 지역에 가서 선교를 수행하려 하면 그 과정에서 상당한 윤리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은 현지의 윤리 관점에서 보면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때 교회는 윤리를 우선순위에 두면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수행되기 어렵다. 이런 점을 잘 아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교 현장에 파송하시면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말씀하시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7)라고 말씀하셨다. 윤리적으로 생각하여 복음을 반대하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선택하고 복음을 포기하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종국적으로 평화가 올 것이지만 잠시 평화가 깨어진다 해도 복음과 선교를 선택한 것이 기독교의 역사이고 이러한 선택의 결과로 기독교가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선교적 과제를 윤리적 과제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넷째,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과제인 반면 포괄적 의미의 윤리적 과제는 교회도 할 수 있는 과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과제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과제이다. 세상의 어떤 다른 기관들이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다양한 기구도 할 수 있는 정의, 평화, 생명살림 같은 윤리적 과제를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선교적 과제와 동일한 중요도로 놓고 선교 개념을 정립하면 그것은 결국 전도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로잔은 선교와 윤리를 잘 구분하고 선교에 우선성을 부여하여 실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세계복음화를 위해 중요할 것이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 『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 『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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