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십 년간 목수로 일해 온 다니엘은 심장병에 걸려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에 놓입니다. 실업 급여를 신청하려고 관공서에 가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복잡한 절차 때문에 번번이 허탕을 칩니다. 생계 보조금을 수급하려고 관공서에 온 싱글맘 케이티는 지각했다는 이유로 수혜를 받지 못하자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곤경에 처한 케이티를 다니엘이 도와주면서 그들은 가족과 같은 끈끈한 관계가 되지만, 그렇다고 비루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케이티는 어둠의 길을 선택하고, 다니엘은 수급 자격심사에서 탈락합니다.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마지막 힘을 내 다니엘의 질병 수당 자격 탈락에 항고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행이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옵니다.
복지제도의 허점을 그려내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감독)는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현대 복지제도의 허점과 모순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꼬집습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다니엘은 의사의 소견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상태이지만, 모순적이게도 구직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구직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능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입증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죠. 게다가 구직 활동을 증명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자칭 ‘연필 세대’인 다니엘에게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한 이력서를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뿐 아니라, 각종 신청이란 것도 인터넷으로 진행되니 다니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마우스를 모니터 위에 올려 대는 장면은 컴퓨터에 취약한 소외계층에게 현대식 절차란 유리장벽과도 같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 복지 시스템은 체계적이고, 담당 공무원들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일을 진행합니다. 인터넷으로 진행되는 각종 수급제도 또한 분명 합리적이죠. 하지만 복잡한 절차는 그 자체로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떨어뜨립니다. 다니엘처럼 인터넷 사용조차 어려운 취약계층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는 허점을 갖고 있는 것이죠. 컴퓨터 앞에서 쩔쩔매는 다니엘을 도와주려는 공무원은 절차상 문제를 유발한다며 상급자에게 책망을 듣습니다. 질병 수당에 대해 다니엘이 공무원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화면은 마치 암전 처리된 것처럼 음성만 들릴 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복지 제도 안에 정작 사람의 온기가 없음을 은유하는 장면이지요. 영화는 취약계층의 비루한 현실을 건조한 연출기법으로 묘사하면서 복지제도라는 시스템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취약계층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취약계층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는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에서 바치는 제물을 형편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경우에는 소나 양보다 값이 싼 비둘기를 바칠 수 있게 하셨고, 극빈한 자들은 아주 적은 양의 밀만 드려도 되게끔 하셨죠. 가난한 자를 배려한 예외규정을 두셔서 그 누구도 제사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레위기 1,4,5장).
도피성 제도는 복지제도라기보다는 사법제도에 가깝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배려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피성이란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으로서 재판을 통해 과실치사였음이 밝혀지면 비록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처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은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이든지 빨리 당도할 수 있도록 거리를 감안해서 여러 곳을 두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도피성으로 향하는 노정에 어려움이 없도록 길을 잘 닦아 놓게끔 하셨죠. 궁지에 몰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습니다(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여호수아 20장).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은 율법이라는 규정을 어기는 행위였음에도,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누가복음 6:6-11). 안식일이라는 규정보다 그 규정의 취지와 본질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눈앞에서 병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안식일이라는 규정에 얽매여 돕지 않는다면 영화가 그려내는 모순적인 복지제도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성경 속 사건들과 복잡한 현대사회의 복지제도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꼬집는 모순에 대한 원리적 해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보편적인 복지를 누릴 수 없는 특수한 경우에 대한 배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제도에 매몰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겠지요.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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