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권 교수(장신대)가 14일 유튜브 채널 온신학TV에서 ‘칼뱅은 종말론에 관심이 없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종교개혁자 칼뱅이라고 하면 예정론, 예정을 강조하는 신학자, 또 칭의론과 성화론을 강조하는 신학자로 알고 있다”며 “반면에 칼뱅은 종말론에 관심이 없는 신학자로 여기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신학자들도 칼뱅이 종말론에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며 “첫 번째는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종말론에 대한 주제를 3권 25장에서 단 한 장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칭의론의 경우 3권 11장부터 19장까지 아홉 장에 걸쳐 길게 다뤘다. 또 예정론은 3권 21장에서 24장까지 4장으로 충분히 다뤘다고, 성화와 기독교인의 삶은 3권 3장에서 10장까지 여덟 장에 걸쳐 길게 다뤘다”고 했다.
그는 “외형적으로 종말론이 한 장으로 다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종말론에 대한 칼뱅의 사고는 「기독교 강요」 전체를 통해 다루어지고 관통하고 있다”며 “「기독교 강요」는 창조와 타락과 구원과 완성이다. 종말이라는 구속사 전체를 다루고 있기에 종말론의 중요성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과 연결된다”고 했다.
이어 “칼뱅이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룰 때, ‘밀래의 삶의 묵상, 미래의 삶을 기대하는’이라는 주제를 중요한 내용으로 다뤘다”며 “밀래의 삶의 묵상은 종말을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성의 관점에서 현재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칼뱅은 주장했다”고 했다.
더불어 “칼뱅은 하나님 나라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 나라 개념의 ‘이미와 아직 아니의’ 종말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며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도래와 함께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주권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라고 진보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확장된다는 견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 뿐만 아니라 또 그의 주석이나 설교에서 종말론이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진다”며 “먼저, 코넬리스 비네마(Cornelis Venema)라는 신학자는 ‘종말론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목표 내지는 목적에 관한 숙고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 전체와 다른 저술들을 관통하여 엮는 실’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칼뱅이 신약성경 주석에서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칼뱅이 종말론에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며 “칼뱅이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은 것은 종말론이나 요한계시록에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55세의 나이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칼뱅은 비록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진 못했지만, 「기독교 강요」 3권 25장에서 종말장을 쓰면서 요한계시록을 스무 번에 걸쳐 인용 할 만큼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종말론적 특징을 가진 칼뱅신학을 말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 조직신학자 앙드레 비르믈레는 ‘칼뱅은 그의 신학적 성찰의 많은 부분에 종말론적인 성격을 부여했다’라고 주장했다”며 “스위스 로잔대학 조직신학 교수 삐에른 지젤은 ‘칼뱅의 전체 신학 안에서 종말론의 강조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기독교인의 삶과 세례 혹은 성찬, 신비적 연합은 종말론적인 강조 안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칼뱅이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을 출판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1534년에 「영혼수면론 논박」이라는 신학 작품을 처음 저술했다. 이 작품의 주제가 종말론이었다. 이것으로 칼뱅의 사상의 초기부터 종말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종말론은 그의 사상에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깊히 들어와 있는 주제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데이비드 홀레브다(David E. Holwerda, 칼빈신학교 교수)는 ‘칼뱅이 종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기독교 신학자로서 칼뱅이 역사적으로 그토록 강력한 위상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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