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섬김과 고난의 종 메시아

1. 사회,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되기를 거절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나사렛 예수는 로마 황제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을 인정하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세를 내는 것도 인정하였다(마 22:21). 황제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말은 열심당원에 의하면 로마권력에 타협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잘 음미해보면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말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 이상은 주지 말라는 것이다. 가이사에게 속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거절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예수는 사회나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되기를 거절하셨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예수의 이러한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를 정상적인 랍비로 보았다. 랍비의 의무는 법적 사건이나 유산(遺産) 분쟁을 척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 12:13)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대답하신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 12:14). 예수는 자신이 재산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심을 확실히 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신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예수는 사회, 정치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다가오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였고, 그의 인격 자신이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실재였다.

2. 섬김과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 산에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이병오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라고 열광하였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 6:14). 예수가 만일 열심당원이었으면, 당시 자기를 메시아로 생각하고 왕으로 삼으려는 5천명 추종자들을 동원하여 당시 로마총독부를 점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의 저의(底意)를 알고 한적한 곳으로 피하신다.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5). 당시 군중들은 열심당(the Zealots)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로마의 정치적 압제에서 해방받는 정치적 왕국이라고 오해하였다. 이로 인해 예수는 이들로부터 피신하신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하셨다. 예수는 갈릴리 북부지역인 가이사라 빌립보(Caesarea Philippi) 지방에 이르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비로소 자신의 사명을 공개하신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이 중요한 장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마가(막 8:31-32), 누가(눅 9:22)도 한결같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런 일이 선생님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예수는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 마 16:23)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그의 사역이 제자들이 이해한 정치적인 유대왕국 회복이 아니었음을 단호하게 표명하였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열심당원이 아니었다. 만일 예수가 열심당원이었다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마 22:17)라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의 질문에 대하여 단호히 “옳지 않다!” 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가이사에 속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입장과 열심당원의 입장을 명료히 구분하였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열심당원들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예수는 명료히 메시아 의식을 가지셨다. 그러나 그의 메시아 사명은 정치적으로 왕이 되는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섬김과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섬김과 고난의 종으로서 그의 메시아 사명을 각성하고 계셨다. 이 사명의 구체적인 수행과 그의 인격 안에 하나님 나라는 현존하고 있다. 미래에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나사렛 예수 안에서 현재가 되고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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