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오는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올 상반기 중 대통령령을 개정해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 기념행사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북한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고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고 밝힌 지난달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위한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에 통일부가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기로 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 기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탈북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제고가 기대된다.
사실 7월 14일은 탈북민들에게 매우 의미있는 날이다. 탈북민의 법적 지위와 정착 지원 정책의 근간이 되는 ‘북한이탈주민법’이 처음 시행된 날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12월 여야가 합의로 해당 법률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간 게 그 이듬해 7월 14일이다.
이 법이 시행될 당시 국내 탈북민은 채 1천 명이 되지 않았다. 그랬던 탈북민 수가 지금은 3만4천명을 넘어섰다. 북한의 인권 사정이 점점 더 나빠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갈수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역경을 딛고 대한민국에 온 탈북민이나 그들을 맞아들인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김정은은 최근 조부인 김일성 때 시작돼 아버지 김정일의 유훈인 ‘통일’을 부정하고 헌법에 기록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통일 유업’ 등의 단어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때에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해 국가기념일로 지키면 북한을 향해 우리는 북한 주민에 대한 관심과 구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고 본다.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과 국가기념일 추진은 수많은 탈북민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런 노력과 열망이 결실하기까지는 감내해야 할 시간이 길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엎어지고 무산되는 일이 반복되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날을 고대해 온 탈북민들의 감회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민 국민의 힘 태영호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하도록 활동해 온 인사다. 그는 지난달 23일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의 동력을 얻게 된 배경이 있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중국 당국이 자국에 억류중인 탈북민 600여 명을 강제로 북한에 압송한 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중국 당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쳤고 자연 우리 정부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중국의 반인륜적 횡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정부로 하여금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앞당겨 추진하는 데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이날이 탈북민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과 국제사회의 공조가 합해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통일부는 상반기 안으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국가기념일에 포함시키기 위한 일종의 법적 정지작업이다. 그런 후에 제1회 기념행사를 성대히 열고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탈북민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비와 기념공원도 조성할 방침이다.
이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정부가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고 기념비와 공원을 만드는 것으로 이제 할 일을 다 했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최근 ‘북배경주민과의 동행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탈북민’을 ‘북배경주민’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땐 ‘탈북민’을 ‘새터민’으로 바꾸기로 했다가 누군 ‘헌터민’이냐는 말이 나왔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온 탈북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서는 이방인 취급하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밑바닥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꺼리는 정서가 남아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에 이 사회 질서에 융화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탈북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탈북민들을 생각할 때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그런 만큼 탈북민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전기가 마련되는 날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날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국민과 탈북민을 분리하는 보이지 않는 인식의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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