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강의 시간에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나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답하면 성경적으로 정확한 답이 될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한 사람에게 되레 내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나요?” 그러면 십중팔구 “예스!”라고 답한다. 그러면 처음 질문 던진 사람이 그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질문을 던졌음을 파악할 수 있다.

답을 알면서 왜 질문을 던졌을까? 첫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답이 맞는지 몰라서 호기심 내지는 궁금증이 있었기에 물은 것이고, 둘째는 교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물은 것이리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면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어야 정상이다.

나 역시 어릴 땐 그렇게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데 어떻게 구원받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상식에 해당하는 질문을 사람들은 왜 자꾸 던지는 것일까?’ 이런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그 상식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우선 성경은 아예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보다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대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가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라인이 아니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요일 3:12) 자, 즉 마귀에게 속한 자였다. 그럼 불신자였을까? 아니다. 그가 하나님과 대화까지 했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보라.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행동을 했던 많은 왕들의 삶을 보라.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을까? 아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도 알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들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평안할 때나 전쟁 중에 행하신 역사들, 개인 한 사람 한사람에게 나타내신 이적과 기사들과 축복과 저주들을 직접 목격하거나 체험한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불순종하거나 그 명령을 거역한 이들이 많음을 본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36장에 나오는 여호야김 왕을 보라. 예레미야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두루마리 내용을 한 절 한 절 읽어주는데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옷을 찢고 마음을 찢어 회개하기보다 들은 말씀 하나 하나를 칼로 찢어 난도질을 한 뒤 난로불에 던져 넣어 불태워버렸다(렘 36:3). 그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불신자여서 그리했다고 볼 수 있나?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자기 이전 왕들과 백성들에게 성경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달하신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그런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청종하는 걸 싫어하고 꺼려했다는 점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저주와 심판의 메시지가 담긴 말씀이 듣기가 싫어서 그것들을 찢어서 불에 태우면 그분의 모든 저주들도 불살라져서 현실화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어리석고 사악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고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몽땅 불태운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요나를 보라.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요나가...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1a, 2b).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요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런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이다. 그러다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만에 살아나오고 난 이후엔 하는 수 없이 다시스로 갔지만, 그가 예상했던 바대로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니느웨 백성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자 그런 하나님이 싫다고 대놓고 분노한 것이다.

학생이 던지고 내가 그 학생에게 던진 처음 질문들로 돌아가보자.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답은 아닐 수도 있다’이다. 지금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잘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맞다면 그분이 보내신 예수님을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메시아임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소수의 ‘메시아닉 주’(Messianic Jew)를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게 맞다면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구원파 이단은 또 어떨까? 그들은 우리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지 않는가? 맞다. 그들은 대부분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우리와 똑같이 예수님을 구세주로나 메시아로 믿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이유는?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님은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단성이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고수하고 있는 한 그들이 믿는 예수님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앙하는 신자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유대인이나 이단들처럼 천국이나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일 수 있음에 유의하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지만, 그 지식은 ‘참된 지식’이라야 함을 꼭 기억해야 하고, 아무리 참된 지식을 잘 알고 있다 해도 그 지식을 존중히 여기고 자신이 아는 바대로 순종하고 행동에 옮겨 ‘열매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자신을 신자라고 착각하는 ‘신자 호소인’으로는 곤란하다. 참 신자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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