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인구 중에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정확히 조사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 대상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질문방법을 어떻게 하는지, 또는 동성애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 쉽다. 또한 레스비언들은 성적 끌림이 없어도 성교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애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동성애 행동”(대개 항문성교, 구강성교 또는 상호자위)과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이미 1948년에 출판된 킨제이의 《동성애 척도》라는 개념에서 시사되고 있다. 《동성애 척도》는 성지남을 전적인 이성애자와 전적인 동성애자 사이 7단계의 스펙트럼으로 구분하고 스스로 평가하게 하는 척도였다. 킨제이는 연구 결과, 연구대상 중에 일생동안 한번이라도 동성애 경험을 한 사람이 남자 37%, 여자 13%에 달한다고 하였다. 이들 모두가 ”동성애자“는 아니다. 반면 전적인 동성애자는 4%였고, 적어도 지난 3년간 다소간 전적으로 동성애를 하는 사람은 10%라 하였다. 이런 데이터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동성애자들이 예상보다 많구나 하는 충격에 빠트렸다.
이후 동성애자들은 대중을 향해 동성애자는 인구의 10%라고 반복 말하여, 이후 항간에 동성애자가 인구의 10%라는 “신화”(10% myth)가 퍼졌다. 이런 홍보활동은 동성애자 수가 많으므로 동성애가 사회문화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셈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 킨제이가 의도적으로 조사대상에 동성애자나 창부나 죄수나, 자원자들을 많이 포함한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는다.
한편 1973년 동성애가 ”정상화“된 이후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동성애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성애자가 킨제이보고서 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현재 서구에서 전체 인구 중 게이는 2-4%, 레스비언은 1-2%로, 도합 인구의 2% 내외로 보고 있다.
역시 미국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몇몇 소규모 연구들에 이어, 1994년 전국여론조사센터(NORC)가 실행한 대규모의 “국민 건강과 사회 생활 설문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동성애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서, 또 응답자의 성별에 따라, 동성애 빈도가 대략 1%에서 9%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적 지남의 3가지 상태(끌림, 행동 및 정체성)에서 모두 전적인 동성애자는 남자 0.6% 여자 0.2%였다.
2003년 미국 대법원에서 the Lawrence vs. Texas case (통칭 the Texas sodomy case) 재판이 있었다. 이때 동성애를 옹호하는 31개의 단체들이 합동으로 동성애를 옹호하는 amicus curiae를 제출하였다. 여기서 그들은 당시까지의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 남자의 2.8%, 여자의 1.4%가 자신들이 게이, 레스비언, 또는 양성애자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하였다. 또한 남자의 0.9%, 여자의 0.4%가 18세 이후 전적으로 동성애 파트너만 가졌다고 하였다.
2006-2008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실시한 전국 차원의 조사에서 동성애자의 빈도는 1.4%, 양성애자의 빈도는 2.3%였다(트랜스젠더 포함하면 3.8%).
2010년 화이트헤드가 1988년부터 2010년 사이의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 동성애 빈도는 게이 약 1%, 레스비언 약 0.6%, 전체 약 0.8%이다. 또한 남성 양성애자와 게이를 합하면 약 2.9%이고, 여성 양성애자와 레스비언을 합하면 약 1.8%이고, 전체 약 2.4%였다.
2014년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의하면 18세 이상 남녀에서, 동성애자는 1.6%이고, 양성애자는 0.7%로, 전체 2.3%였다.
그리하여 킨제이 보고서의 동성애 빈도는 과장되었다는 비판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킨제이 옹호자들은 킨제이는 분명히 “남자의 4%, 그리고 여자의 2-3%가 평생에 걸쳐 동성애로 산다”고 말하였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이 숫자마저도 이후 새로운 자료에 의하면 너무 높게 본 것이다.
청소년들의 경우 동성끌림을 보고하는 비률이 15% 정도라고 하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 2.8%로 줄어든다. 그런데다 사춘기를 끝내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청소년들 대부분은 이성애자라고 생각을 바꾼다. 즉 성지남은 유동적(fluid)이다.
역학적 연구에 의하면 서구의 경우 동성애자들은 젊은이들에게 많고, 젊을수록 양성애자가 많고, 농촌지역보다 도시에 많고, 이성애자들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다. 경제적으로도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보다 수입이 더 많다.
이런 역학 연구들의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① 동성애 옹호자들은 동성애자가 사회에 많기 때문에 그들을 비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람 수가 많다고 해서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② 어느 정도 동성애를 빈번하게 해야 동성애자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다. 상당수가 동성애자라고 하면서 이성애도 하고, 이성애자도 가끔은 동성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 척도》의 스펙트럼 개념은 성지남에 유동성(fluidity)이 있음을 암시한다. 유동성은 청소년은 물론 성인에서도 나타나며 특히 레스비언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 유동성 인정은 중요하다. 동성애가 유동적이라면, 동성애가 타고난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또 전환치료도 가능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킨제이도 실제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동성애 전환치료를 시도한 바 있다 한다.
③ 동성애(homo-sexuality)는 동성간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라, 동성간 섹스를 말한다. 동성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같이 지내고 싶어해도, 성적 끌림과 성교 행위가 없으면 동성애가 아니다. 따라서 최근의 동성애 관련 조사연구들은, 정의가 애매한 ”동성애자“를 연구 대상으로 하기보다 ”동성애 행위“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수가 많다. 이로써 혼란스런 양성애의 정의 문제도 피할 수 있다.
④ 남녀차이, 성별 차이, 거주지 그리고 교육과 경제 수준 등에 따른 차이 등등은, 동성애 원인이 선천성이라기보다 ”환경의 영향“ 때문임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동성애 이슈가 신문, 영화나 드라마, 또는 토크쇼 등 미디어에 자주 등장함으로, 동성애 행동의 빈도를 높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눈에 자주 띄면(visibility) 익숙해지고, 그러면 동성애가 정상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동성애를 시도하게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⑤ 100% 동성애자들에게 이성과의 섹스가 전혀 불가능할까? 적어도 킨제이의 스펙트럼의 개념을 따르면, 아니라고 본다. 동성애자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이성애의 능력“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성을 향해 (orient 지남) 나타내지 않고, 동성으로 향하게 된 사람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언급대로 그들에게 이성애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성지남 문제가 더욱 복잡해 진 것은, 얼마전 무성애(asexuality)가 성지남의 하나로 등장한 사실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범성애(pansexuality), 트랜스젠더나 퀴어를 향한 성적 지남(skoliosexuality 등등) 같은 더 괴이(queer)한 개념들이 속속 다수 등장하고 있다. 성지남과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다.
반복 말하거니와,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녀로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시었음을 믿는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도시화와 ”진보적 교육“ 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에 대해 진지하기보다, 점점 더 제멋대로, 점점 더 흥미와 쾌락 위주로 생각한다. 그틈에 비자연적이고 비생산적인 섹슈얼리티가 전파되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우려스럽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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