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학점과 종교의 자유
채플(chapel)이란 교회에서 드리는 엄숙한 예배의식에 따르기보다는 대학의 강의나 강연형식에 맞춘 열린 예배이다. 기독교 대학들은 채플과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여 일정횟수 이상의 출석을 요구하며 학점 취득보다는 ‘pass or fail’로 하여 출석에 비중을 두고 있다. 요즈음에는 성직자나 교목에 의한 설교보다는 외부인사의 특강이나 공연, 영상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여 비기독교 학생들에게도 크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 대학들이 채플을 교양필수로 하여 전교생에게 이수하도록 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지도자 육성”을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데 채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채플학점을 이수하지 않으면 학위수여를 거부하는 것이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이다. 이는 기독교대학이 가지는 종교교육의 자유와 비기독교 학생들이 가지는 종교를 가지지 아니할 소극적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앞의 글에서 본 1998년 대법원판결과 2007년 헌법재판소결정은 채플의 6학기 참석을 졸업요건으로 정한 숭실대학의 학칙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무효의 학칙이 아니라고 판시함으로써 대학측의 종교교육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기독교대학 총장들에게 채플강요가 학생의 종교자유를 침해한다며 대체과목을 개설하라는 권고를 반복함으로써 국가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뒤집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세우는 근거는 첫째, 종교지식교육과 종파교육의 구분을 전제로 종파교육인 채플은 학생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 학생들의 대학선택을 종교교육에 대한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것, 셋째, 학생에게 채플과목에 대한 수인의무가 없으므로 대체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지식교육과 종파교육을 구분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종교교육을 종교지식교육과 종파교육으로 구분하고 기독교 대학들은 종교지식교육은 자유로 할 수 있되 종교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종파교육은 반드시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논리는,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아니면 종교다원주의를 교묘히 포장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종교에 관한 지식은 굳이 기독교대학이 아니더라도 일반대학에서 인문학의 하나로 교육하며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종교학과를 두는 것만 보아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지식교육을 가리켜 굳이 종교교육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기독교대학은 이러한 종교지식교육이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 즉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말하는 종파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만일 기독교대학들이 학생들의 동의가 없으면 기독교적 가치관을 교육할 수 없다면 이는 사학의 자율성, 기독교 대학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를 위시해서 어느 종교이든 모든 종교는 자신들이 믿는 신념을 전하고 후대에 전수할 교육을 중시한다. 그래서 많은 재원을 투자해서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함으로써 국가가 미처 다하지 못하는 고등교육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직접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대학과는 달리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학생들도 받아들이고 있으며 신학 이외에 일반학과를 두고 있지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헌법 제31조 3항과 교육기본법은 이러한 사학의 자율성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2007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와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 요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헌법 정신은 학교법인과 관련된 법률을 해석할 때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는 사학의 교육내용이 교육자에 의하여 자주적으로 결정되고, 행정권력에 의한 교육통제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다. 더구나 대학은 의무교육인 초중등학교와는 달리 학문의 자유, 대학자치권이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숭실대 채플 사건에서 1998년 대법원판결과 2007년 헌법재판소결정은 “채플은 학생들에게 종교교육을 함으로써 진리·사랑에 기초한 보편적 교양인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대학예배에의 6학기 참석을 졸업요건으로 정한 위 대학교의 학칙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무효의 학칙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법원판결에서 말하는 ‘종교교육’을 ‘종교지식교육’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축소⋅왜곡한 것은 기독교 교육을 봉쇄하기 위한 교묘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근거로 대광고 사건에 관한 대법원판결을 제시한 것은 학교 선택권이 없는 고등학교를 대학에 가져다 붙인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대학 선택을 종교교육에 대한 동의로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선택 기준이 학생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대학 서열화에 따른 타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독교대학 선택과 입학시 학칙준수 선서를 종교교육을 받아들인다는 동의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도 수긍하기 어렵다.
대학은 전교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할 교양필수과목과 학과별 전공필수과목 및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는 선택과목으로 커리큘럼을 편성하고 이를 학칙과 학사 내규로 정하여 공시한다. 대학에 따라서는 입시요강에 포함시켜 응시생들에게 선택 자료로 제시하며 학생들은 이를 숙지하고 그 대학에 응시한다. 만일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대체과목을 편성해야 한다면 필수과목을 없애고 모두 선택과목만으로 커리귤럼을 정해야 할 것이다.
대학자치의 원칙상 대학마다 무슨 과목을 교양필수로 정할지는 그 대학의 건학이념에 따르게 된다. 예를 들면 필자가 명예교수로 있는 중앙대학은 대기업이 재단에 참여하는 관계로 ‘앙트레프레너쉽 시대의 회계’를 교양필수로 정하고 있다. 이는 전공에 관계없이 돈의 흐름을 아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중요하다는 기업가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중앙대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의 건학이념과 그에 따른 졸업요건을 충분히 숙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 전공이 회계와는 무관하고 듣기 싫어도 회계학 수강을 거부하고 대체과목을 요구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어떤 대학도 일일이 학생들의 동의를 받아서 교약필수과목을 개설하지 않는다.
대법원판결이 적시하듯이 채플은 종교인 양성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정신인 진리·사랑에 기초한 보편적 교양인을 양성을 위한 과목이다. 그 형식도 교회의 예배가 아닌 대학 교양강좌 형식에 맞추고 목사가 아닌 외부인사의 특강이나 공연, 영상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여 비기독교 학생들에게도 크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대학이 채플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는 것은 학생들의 종교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채플이수는 학생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수강을 거부할 경우 대체과목을 편성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를 부정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에게 수인의무가 없으므로 수강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독교대학에 입학한 비신앙 학생들에게는 종교교육에 대한 수인의무가 없으므로 수강거부권과 대체과목을 편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사립대학과 학생의 관계를 사법상 계약관계로 보는 기존 법원판결례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채플이 단순히 출석만을 요구하는 P/F방식으로 운영되는 점을 간과한 억지에 불과하다
서울고등법원은 1989년 판결에서 “학생이 사립대학교에 입학이 허가됨으로써 그 학교법인과의 사이에 발생하는 법률관계는 학생이 학교법인의 학칙과 규정을 승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사법상의 계약관계라 할 것이므로 학교법인은 일방적으로 학칙과 규정 등을 제정하여 학생에게 지시·명령을 발할 수 있고 학생은 학교법인이 일방적으로 정한 학칙과 규정 등에 기속된다”고 판시하고 있다(89나19110, 88가합3407).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대학은 학생교육과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연구시설로서 그 설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사항에 관하여 자율적, 포괄적 권능을 가지고 있는 일반시민사회와는 다른 ‘특수한 부분사회’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의 기본질서를 정하는 학칙과 학사 내규는 마치 회사의 정관과 같이 구성원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객관적인 규범으로서 기독교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학칙과 학사내규에 정하는 교양필수과목인 채플에 대한 수인의무가 없다는 논리는 법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더구나 현재 기독교 대학에서 운영하는 채플은 사랑과 헌신, 근면과 경건 생활 등 기독교 정신을 가르칠 뿐 직접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지 않으며, 출석만 졸업요건으로 할 뿐 그 태도나 성과 등을 평가하지 않는 pass or fail로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는 채플에 들어와도 강의를 듣지 않거나 다른 책을 읽어도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채플에 대한 학생들의 수인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지극히 편향적인 태도라고 할 것이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헌법과 교육기본법 및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성과 대학자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정신에 따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숭실대 사건에서 기독교 대학의 종교교육의 자유를 존중하여 채플 이수 요구가 학생들의 종교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과는 달리 학교선택권이 없는 대광고 판결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는 채플은 종교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기독교 대학 총장들에게 대체과목 편성을 요구하는 권고를 반복하여 내리고 있다.
이는 행정기관의 하나에 불과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위에서 군림하는 초헌법적 원권이라고 할 것이며 그 이면에는 기독교 교육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안티기독교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 없다.
서헌제(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1600-9830, 스마트폰앱 ‘처치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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