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8시에 찬양예배를 드릴 때 감사기도도 올려 드린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지는 성경말씀이다. 마귀의 자식은 몰라도 되지만, 하나님 자녀는 꼭 말조심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 찬양, 감사기도를 올려 드려 하나님께 기쁨을 드려야 하는 것이 옳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다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다. 자녀가 잘못할 때 근심 어린 모습을 보여 주시고 잘할 때는 환한 웃음을 보여 주신다. 자녀들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너무 기뻐하시고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기도를 드릴 때 주님은 춤을 추실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 인간들은 하나 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사랑의 하나님 께서 큰 은혜로 주신 것이 회개이다. 중보기도자의 시선으로 보면 죄를 저질러도 곧 울며 회개기도하는 사 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막무가내로 버티는 사람이 있다. ‘저 사람 위험 한데 왜 저렇게 버티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회개의 영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부어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영주 – 주님은 살아계신다
창세기는 눈부신 과학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을 당황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도 이 책이 현대인들을 매료하는 이유는 여기에 나오는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인간과 세계에 대해 심오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대서다. 그래서 창세기가 빠져 있는 역사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창조는 상상 속의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났다! 창조의 역사성 규명이 지난한 일이긴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세계와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 있게 창조되었다고 확신한다. 창조는 그 역사성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해서 구약신학에서 소문난 의붓아들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창조는 성서를 종합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해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창조는 거뜬하고 유연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려고 마음먹었을 때 무슨 갈등이나 고민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호하지만 평안하게, 엄중하지만 은혜롭게, 번거롭지만 지혜롭게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궁극적인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창세기의 저자라는 사실은 창세기 선언들의 신적 진리, 역사적 사실, 사료의 편찬을 확실히 보증해준다. 만일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우리들 기독교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아담의 역사성은 복음으로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준수 – 창세기를 캐스팅하다
웨슬리가 가르친 다양한 교리를 하나로 묶어줄 뿐 아니라 그 배후에서 모든 교리의 원천과 맥락을 제공해주는 웨슬리 신학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다. 인간 창조에서부터 성도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양심을 선물로 주신 데서부터 성령의 친절한 인도하심에 이르기까지, 죄를 깨닫는 데서부터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기까지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웨슬리의 구원 신학에서는 인간의 타락을 생각하든, 구원 과정의 어떤 단계를 다루든 하나님의 은혜가 핵심 주제가 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웨슬리 신학 이해에서 이 지극히 중요한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웨슬리 신학에서 울려 퍼지는 첫 화음이자 이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다
케네스 콜린스 – 성경적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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