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6일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국회가 졸속 입법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환심을 사기 위한 대북 굴종의 산물이란 점에서다.
‘대북전단금지법’이 문재인 정부가 주도한 졸속 입법 중 가장 대표적 사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헌재 판결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에 대한 위헌 심판이 지난 정부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한 지 2년 9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는 게 더 의아하다.
이 법의 핵심은 대북 전단을 살포한 자에게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데 있다. 우리 국민에게 위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데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엄벌 규정을 한 것 자체가 이미 위헌 요소를 지녔다. 이런 비상식적인 입법을 지난 정부와 당시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국민이 아닌 북한을 위해 사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결함이 있다. 이런 악법이 횡행하지 못하도록 헌재가 국민 편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데서 법체계의 무력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 법의 탄생 비화는 더 기막히다. 지난 2020년 6월 북한 김여정은 담화에서 대북인권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했다. 이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와 개성공단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들먹였다.
이런 북의 협박에 맞장구친 게 당시 통일부였다. 김여정의 담화 발표가 있는지 불과 4시간여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내 논 브리핑이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였다. 그러고 나서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을 그대로 밀어붙여 국회에서 단독 강행 처리했다.
이 법이 남긴 놀라운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제정되는 그 어떤 법도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유익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법은 국민이 아닌 북한 정권의 입맛에 맞췄다는 점에서 반(反)국가적이다. 정치적 인권 유린이 일상화된 북한 주민이 아닌 잔인무도한 독재자 일가의 편을 들었다는 건 지난 정부가 내세운 인권 편향적인 민낯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
이 법이 애초부터 무리한 입법이었다는 건 지난 정부가 내세운 입법 취지가 잘 말해 준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 보장이 그 배경인데 그 말은 전단지를 살포하면 북한군이 총과 대포를 쏴 접경지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런 이유라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리를 제한하기 전에 접경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에 항의하고 대응하는 게 먼저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짚었다. 재판관 중 네 명이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판단한 것이 그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건 북한인데 전단 살포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뜻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에 들어가자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잇따랐다. 이 법이 북한의 인권 개선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중국과 아프리카·남미 등지의 인권 후진국들을 대상으로 하던 미 의회 초당적 기구가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었다는 자체가 수치스러운 기록이다.
누가 뭐라든 결과라도 좋았으면 그래도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지일관 굴종적인 대북 자세의 결과가 국민 세금 340억여 원이 투입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측에 의해 폭파돼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일이라면 참담하고 기막힌 노릇이다. 당시 통일부가 김여정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연합’의 법인 설립까지 취소하면서까지 눈치보기를 일관하고 돌아온 게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었으니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나.
헌재의 위헌 결정에 북한인권단체 뿐 아니라 교계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헌재의 위헌 결정은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인 반국가적인 입법이자 헌법상 최대한 보장되어야 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반헌법적 입법에 대해 응징한 지당한 결정”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연합은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을 외면한 채 3대 세습 독재정권에 굴종해 이런 법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수치”라며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대북 굴종에서 비롯된 ‘대북전단금지법’ 졸속 입법에 대해 국민 앞에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교연이 지적한 대로 이 법의 책임 당사자는 지난 정부의 통일부와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바뀌었다고 지금의 통일부가 책임을 외면하는 것도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최소한 사과와 재발 방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을 추종해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만든 ‘악법’의 초라한 퇴장에 대해 일말의 도의적 책임을 지는 일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