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27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은혜의 반대는 노력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은혜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 언어이다. 기독교 복음의 정수를 알기 위해서는 은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은혜(grace)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는 첫째는 형태, 몸가짐, 동작, 행동의 우아함 혹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둘째는 호의나 선의와 관계되고, 셋째는 호의의 표현과 관계된다”며 “그리고 넷째는 사람의 마음에 아무 공로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삶에 소망의 시금석으로 작용한다.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물론 성경에서 인간의 죄를 말하는 것은 인간의 정체성과 한계를 말하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죄는 인간의 한계성만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희망의 근원을 말하기 위한 역설이 있다. 인간의 희망의 근원과 원동력은 은혜의 복음이다. 은혜는 인간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혁하는 힘”이라고 했다.
이어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열매는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기쁨”이라며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공기를 들이마시듯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며 호흡한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흠뻑 누리면, 그것이 우리 마음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몰아낸다”고 했다.
최창국 교수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인류의 공공선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은혜와 관계된 특별 은혜와 삶의 진선미와 관계된 보통 은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특별 은혜는 초자연적이지만, 보통 은혜는 자연적이다. 특별 은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주어지지만, 보통 은혜도 구원의 일부와 관련이 있지만 죄를 제거하거나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하지 못한다”며 “특별 은혜는 우리의 죄와 죄의 부패를 제거하고,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은혜다. 보통 은혜는 도덕적 삶과 사회 안의 선한 질서, 시민적 공동선, 과학과 예술의 발전 등을 증진한다. 보통 은혜는 죄인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구원의 삶으로 인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것에 시간적으로 우선한다고 할 수 없다”며 “하지만 보통 은혜가 이 세상 안에서 작용할 때 특별 은혜를 보조하기 때문에 논리적 우선성은 특별 은혜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특별 은혜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관계가 있지만, 보통 은혜는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세계 안에서도 역사한다고 할 수 있다”며 “특별 은혜와 보통 은혜는 모두 이 세계 안에서 역사한다. 하지만 보통 은혜가 보다 일상과 자연계와 관계된다고 하면, 특별 은혜는 새 창조의 일들과 관계된다”고 했다.
더불어 “이 두 은혜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며 “특별 은혜뿐 아니라 보통 은혜도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 교회는 보통 은혜의 은사들과 열매들을 중생한 삶의 영향 아래 둠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은혜는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며 “하지만 은혜는 단지 받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고 아래로 흘려보내는 데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과 동시에 은혜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강권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행동하는 삶과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따라서 행동을 통해 은혜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건강한 행동을 낳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단지 좋은 교인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며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자녀, 건강한 시민 됨에 두어야 한다. 좋은 부모, 좋은 아내, 좋은 자녀, 좋은 시민 됨 없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좋은 아버지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있지만, 나쁜 아버지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이는 성경의 원리이기도 하다”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에 있듯이, 좋은 사람과 좋은 그리스도인의 관계도 유기적인 관계다. 물론 과거에 나쁜 아버지였다고 해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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