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은 오직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 그렇다면 죄인을 구원하는 이 믿음은 무엇인가? 교회 역사 속에서 많은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을 탐구해 왔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한 순수한 동의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그리스도인은 인격적으로는 혐오스럽지만, 실력은 뛰어난 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듯이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싫어하지만, 그분께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어서 마지못해 그분을 신뢰할 수 없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런 신뢰가 아니다.
존 파이퍼 총장(베들레헴 신학대학)은 구원하는 믿음에는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며 받아들이는 정서적인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구원에 확신이 없는 신자,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기 원하는 신자, 그리고 이들을 돕기 원하는 교회 리더들에게 이 책은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며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오늘날 교회의 방식을 재검토하여 영혼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확신과 소망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기보다 죄책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배롭게 여긴다. 그들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기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배롭게 여기기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조자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기보다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배롭게 여기기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치유자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기보다 안전을 보배롭게 여기기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보호자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기보다 부자가 되는 것을 보배롭게 여기기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번영을 주시는 분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구원하는 믿음을 정서적인 행위, 즉 보배롭게 여기는 신뢰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두 가지 목적을 함께 이루셨다. 첫째,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그분의 가치로 인해 보배롭게 여김을 받으시는 구주께서는 단순히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 신뢰를 받으시는 구주보다 더욱 영광을 받으신다. 둘째, 하나님은 구원하는 믿음을 그분이 주시는 기적적인 믿음으로서 그리스도를 무엇보다도 보배롭게 여기는 것이 되도록 계획하셨는데, 그로써 이 믿음이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의의 열매를 맺는 열쇠가 되게 하셨다. 즉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보이지 않는 행위가 눈에 보이는 의와 사랑을 낳는 힘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것을 신뢰하며 그분을 보배롭게 여기는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시는 방법이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그러므로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는 내적이고 비가시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또한 몸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시적인 열매를 맺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배롭게 여기는 신뢰라는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은 죄의 뿌리를 끊어내고, 의와 사랑이라는 가시적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열매를 맺는 능력을 준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하는 단장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를 무엇보다도 보배롭게 여기며,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가치를 반영할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만족할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녀 안에서 가장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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