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란 성 지남(性指南. sexual orientation) 중의 하나인데, 성 지남이란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이 향하는 대상 또는 성행위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이성일 때는, 이성애(heterosexuality)라 하고, 동성일 때는 동성애(homosexuality)라 하고, 양쪽 모두일 때는 양성애(bisexuality)라 한다. 요즘은 성적 대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하여 무성애(asexual)라 한다. 당연히 범성애, 다성애 등도 등장하고 있다. 요즘 트랜스젠더에게로 향하는 성지남도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종류의 성지남이 등장할 것이다.
동성애(homosexuality)는 같은 성의 사람들 간에 성적 흥분을 느끼거나 또는 성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보다 엄격히 말하자면 동성애란, ① 동성간 성적 끌림(homosexual attraction), ② 동성간 성행위(homosexual behavior), ③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 (homosexual identity) 등 세 가지로 정의된다, 동성애라 함은 일시적 또는 상황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이 일정한 패턴으로 지속적인 경우를 말한다.
또는 성지남의 정의를 다음 이원적 측정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① 동성간 끌림의 유무, ② 동성간 섹스 파트너의 유무, ③ 자기 정체성(self-identification)이 레스비언, 게이 또는 양성애인가 아니면 이성애적인가.
1973년 이전까지는 동성애는 성도착증에 해당되었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성도착이 아니라고 과학 용어처럼 보이게끔 성 지남이라는 말을 새로이 만들어 내었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homosexuality(동성애)는 의학적 병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싫어하였다. 그래서 남자 동성애자들은 스스로를 게이(gay)라 부르고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부른다. 게이(gay)라는 말은 1960년대에 나타난 게이인권운동(gay-rights movement) 때 등장하였다. 당시 게이는 주로 남자 동성애자들을 지칭했으나, 때때로 여자 동성애자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레스비언(lesbian)은 여자 동성애자만을 의미한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성애 정체성(homosexual identity)이다. 이는 자아정체성(ego identity)에 속하는 것으로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동성애 정체성은 원인에 상관없이, 동성애를 자신의 삶의 방식(way of life)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동성애 정체성은 개인의 비밀로 감출 수도 있고, 주위에 공개-커밍 아웃-할 수도 있다. 한편 잠재형 동성애(latent homosexuality)는 동성애 성향이 있지만 자신이 이를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사람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는 순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를 homosexual panic이라 한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딱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이성애자라고 하면서 동성애를 가끔 즐기는 사람도 있고, 동성애자라고 하면서 가끔 이성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양성애자라고 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도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즉 유동적이다 그래서 학술연구에서도 “동성애자”를 연구대상으로 하기보다, “동성애 행위”를 연구대상으로 하거나, 동성애 파트너 유무로 연구대상을 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재 성 지남은, 킨제이 척도(Kinsey Scale)에서 보듯, 전적인 동성애와 전적인 이성애 사이의 연속선 상 어느 한 지점에 있다는 것으로 본다. 즉 전적인 동성애-거의 전적인 동성애-반반(양성애)-거의 이성애-전적인 이성애 등 여러 단계의 종류로 나뉜다. 또한 그 사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유동성이 있다. 그 유동성은 레스비언들에서 크다.
성 지남은 트랜스젠더와 구분되는 다른 개념이다. 트랜스젠더는 정체성의 문제이고, 동성애는 어떤 대상과 성행위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으로 남자인 사람이 자신이 남성임을 불편하게 여기고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트랜스(젠더) 여자이다. 그런 사람이 남성에게 에로틱한 욕망을 느낀다면 그는 트랜스젠더이면서 동성애자인 것이다.
동성애는 과학적으로 (관찰, 실험 등) 정의하기 매우 애매한 용어이다. 따라서 동성애처럼 생각되나 동성애가 아닌 경우, 즉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동성애의 애(愛)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성교행위, 즉 성애(性愛)이다. Sexuality는 성행위를 의미한다. 전형적인 게이들의 성교는 항문성교이고, 레스비언의 경우 구강성교이다. 즉 성교가 없으면 동성애가 아니다. 남자들끼리의 호감이나 우정, 소위 버디, 브로만스 등은 성교행위가 없으면 결코 동성애가 아니다. 형제애, 전우애, 동지애 등은 동성애가 아니다. Homosocial은 사회적으로 이성보다 동성끼리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행동으로 성적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라 할 수 없다. Soul-mate라 하더라도 성교가 없으면 동성애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심리학회는 동성애 정의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즉 동성간에 감정적(emotional attraction) 및 로맨틱한 끌림을 정의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무리한 것이다. 동성을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동성애라 한다면, 동성애자 수는 매우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확대한 것은 바로 동성애자가 많다는 사실을 내세우고자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앞서 말한대로 동성애라 함은 일시적 또는 상황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이 일정한 패턴으로 지속적인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한때 잠간 동성애 행위를 했어도 동성애자라고 할 수 없다. 일시적 동성애적 경험, 예를 들어 기숙사, 군대, 교도소 등 특정 상황에 제한된 일시적 동성애적 경험, 등도 지속적 패턴(endurance pattern)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은 실험적으로 모험적으로 여러 형태의 성행동을 감행할 수 있다. 성인 이성애자들도 한때 동성애 경험을 하기도 한다. 즉 동성애는 유동적이다. 이런 일시적 가벼운 동성애적 행동이나 느낌은, 시간이 자남에 따라 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또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저절로, 또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따라, 또는 자극이 차단되면 자연히 소멸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험 없이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동성간 성교가 없으면 동성애자 아니다. 정치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또는 개인적 신념으로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해서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다.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닐까하는 우려나 강박관념이 있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의 접촉을 받았거나 유혹을 받았다고 해서 심지어 동성애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시적 경험이 반복되면 동성애로 굳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어려서의 동성애적 호기심이나 행동이 성인으로 이행되고 또 고착되지 않도록 “올바른” 성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포괄적 성교육”을 위험시하고 반대하는 것이다. 이때 청소년들의 멘토가 동성애자이면 멘티를 동성애로 인도할 위험이 크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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