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을 받아든 나는 새벽까지 울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하나님의 얼굴빛이 내게 비춰지는 것만 같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이 믿어졌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그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최고의 전략가이시다. 솔직히 그곳을 가보고 결정하라고 했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기도하기 시작한 그다음 날부터 내 머릿속에서 한 구절의 말씀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첫 사역으로 반찬 사역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한 주에 한두 끼를 그나마 제대로 식사하게 된 이후 병원을 모시고 가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얼굴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 너무도 감사하고 좋았다.
최기수 –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예수님은 신자를 건축가에 비유하신다.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는 것처럼 신자도 자기의 신앙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중에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있고 어리석은 건축가가 있다고 말씀하시낟. 지혜로운 건축가는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신앙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건축가는 쉽게 흔들리고 결국에는 무너지고 마는 신앙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건축가와 어리석은 건축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한 가지를 말씀하신다. 신앙을 세우고 실천할 때 무엇을 설계도로 삼고 무엇을 기준점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설계도를 손에 들고 설계도에 따라서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지혜로운 건축가일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은 건축가는 어리석은 건축가일 수밖에 없듯이, 신앙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에도 똑같은 원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태복 – 신앙 베이직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빚어감”의 의미를 공동체와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을 빚어가되, 메시아 예수의 영이 그들 가운데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그들 안에 개인적으로 거하신다는 사실을 온전하고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빚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리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고 예수를 따르겠다고 개인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라는 견해는 물론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를 뛰어넘어 “빚어감”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면, 믿음과 세례 안에 씨앗처럼 뿌려진 그리스도인의 특질을 묘목을 기르듯 양육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열매”를 맺으려면 말이다. 열심을 가진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브라함 언약 안에 있는 것, 곧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의 결과이자, 하나님이 궁극적 자비를 보이시는 이유다. 다소의 사울은 이러한 견해를 열정적으로 지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물로 왔음을 믿게 되었다. “공격”을 받을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나, 하나님의 자비로움이 끝내 이길 것이다.
N. T. 라이트 - N. T. 라이트 갈라디아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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