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네 개의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를 읽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고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복음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예수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수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한국 초창기 개신교는 복음주의, 경건주의, 성서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884년 미국인 알렌이 의료선교사로 입국하기 전 이미 성서는 우리말로 번역되고 있었다. 1882년 만주에서 존 로스와 서북 청년들에 의해서 그리고 1883년 일본에서 이수정에 의해 신약 일부가 번역되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할 때 들고 온 것은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서라고 한다. 당시 이 땅에는 배서인들에 의해 복음서들이 전국에 보급되고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다. 레이놀드는 1883년에서 86년까지 적어도 15,690부의 한글 성서가 국내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초창기 한국교회를 ‘성서의 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처음부터 ‘성서 읽기’와 ‘성경대로 살기’라는 성서 제일주의적인 전통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광진 – 복음서 가로읽기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들은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인간들은 예수님을 믿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구원을 얻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부딪히는 돌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쁩니까? 아니면 근심으로 가득하겠습니까? 제자들을 욕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 삼자의 일에 대해서는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본인의 일이 되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보혜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에 보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동행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 입장은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보혜사를 보내 주시는 것보다 예수님이 죽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보혜사를 받지 못해서입니다.
정석훈 – 나는 날마다 죽노라 4
넓은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어.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게 정말 많고 못 보고 지나치는 것도 많아. 만약에 말이야,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는 안경이 있다면 어떨까? 그 아저씨의 안경가게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이름이 '그'인 그 아저씨 말이야. 그 아저씨는 아주아주 특별한 안경을 만들어. 특별한 그 아저씨의 안경을 땅속에 숨겨 두고 나만 알고 싶었지만, 나는 너에게도 이 비밀을 알려 주고 싶어. 자, 나를 따라와 봐. 그 아저씨를 찾아가 보자! 그 아저씨네 꿈뻑 안경을 쓰면 매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를 볼 수 있어. 이건, 감사를 누구보다 먼저 찾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안경이야.
박미선 – 그 아저씨네 안경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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